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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백윤미(조선비즈 기자) 씨의 외할머니 고 손순옥 씨

지난해 고 손순옥(사진 왼쪽) 씨가 손녀 백윤미(사진 오른쪽) 씨의 내집 마련을 축하하기 위해 상경했을 때 함께 찍은 셀카. 백 씨는 고 손 씨에게 생애 처음으로 네일아트를 선물해드렸다. 백윤미 씨 제공.
지난해 고 손순옥(사진 왼쪽) 씨가 손녀 백윤미(사진 오른쪽) 씨의 내집 마련을 축하하기 위해 상경했을 때 함께 찍은 셀카. 백 씨는 고 손 씨에게 생애 처음으로 네일아트를 선물해드렸다. 백윤미 씨 제공.

할머니, 할머니 없는 세상이 오늘로 꼭 10일째입니다. 돌아가신 그 날부터 날짜를 이렇게 세는 게 습관이 돼가네요. 아직 실감은 잘 안 납니다. 할머니께 전화를 하면 평소처럼 "윤미가" 하면서 받아주실 것만 같거든요. 엄마는 "전화하면 할머니의 딸이 받을거야"라고 웃음섞인 현실 자각을 시켜주셨지만 말이죠.

누군가는 외조모상에 저만큼의 의미를 두지 않더군요. 저는 왜 그럴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그야말로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죠. 이 이야기는 생전에 할머니께도 몇 번 드린 적이 있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표현을 했다는 사실이 어찌나 다행인지요.

할머니는 한 평생 일을 하셨습니다. 넘치는 에너지와 기세로 주변인들의 인정을 받는 커리어 우먼이자 여장부셨죠. 할머니를 평생 봐 온 사람들은 상가집에서도 "할머니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큰 일을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성인 그 자체로도 너무나 큰 존재셨어요. 손님의 남편이 손님에게 화가 나 돌을 던지는 돌발상황에서 1초의 망설임 없이 손으로 그 돌을 막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시던 어린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손은 또 어찌나 크고 손맛도 좋은지, 김장철이 되면 할머니 김치를 얻어먹기 위해 줄 서는 이웃들이 많았죠.

다만 제가 어른이 되고서는 답답한 점도 있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돈 벌어 장성한 자식들 뒷바라지를 오롯이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 베풀고 남은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일흔 다섯이 넘어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면서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는 젊은 날의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제 무지를 깨달았습니다. 친척, 지인, 심지어 제 친구들까지 할머니를 위해 애도를 자처했습니다. 입관식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볼 줄 몰랐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찬 몸을 만지면서 딸인 엄마보다 더 목놓아 울었습니다. 엄마와 이야기했죠. "죽을 때 세 명만 나를 위해 울어 줘도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할머니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평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무너질 것 같다"라는 이야길 하곤 했습니다. 가족들도 동감했습니다. 그만큼 집안의 큰 기둥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죠. 심지어 너무나도 갑작스레 돌아가셨기에 어찌 이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유족은 너무 바빠지더군요. 온갖 처음 접하는 장례 절차를 결정하고, 때로는 유족의 슬픔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장례업체에 맞서기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가족끼리 똘똘 뭉쳐 할머니를 무사히 보내드릴 수 있었죠.

장례가 끝난 후 아직은 마취에 걸린 듯 멍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의 쓰나미가 언제쯤 나를 덮칠까 기다리며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생각보다는 잘 살아 나가고 있습니다. 문득 더 잘해드릴 걸, 하고 죄책감이 들 때는 '그래도 작년에 거제 여행도 모시고 갔었지' '예비 신랑을 두 번이나 보고 가셨지' 하는 자기 위안도 하면서요.

그간 단단해진 걸까요? 엄마가 "할머니가 늘 도와주실거야"라고 말해서일까요?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높은 가을 하늘을 보면서 "순옥씨 잘 있나?"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요. 청명한 하늘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할머니가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말이죠. 하늘이 있는 한 할머니는 저를 늘 지켜주시겠지요. 할머니는 언제나 저의 슈퍼맨이었으니까요.

이기적인 손녀가 천국에 계신 할머니께 또 하나의 미션을 드립니다. 이제는 저의 수호신이 되어 주세요.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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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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