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자 대구 출신인 정호승 시인의 수필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추천하며 입을 열었다. 대표적인 '조사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다가 대구지방국세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 27년을 마무리하고 '납세자 권익 지킴이'로 변신한 조정목 세무법인 광화문 대표세무사. 조 대표세무사는 납세자들을 향해 "세금은 전문분야"라며 "기본적인 지식과 상식이 있어야 절세도, 권리 주장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고향의 젊은이들에게는 선택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라고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퇴임하고 새 출발한지 1년 6개월 됐다. 어떤 시간이었나?
▶너무 빨리 지나 갔다. 생동하는 봄기운을 느끼며 세무법인 광화문이라는 새 열차를 갈아타고 인생 여정을 계속해왔다. 꽉 짜여진 생활을 해야 하는 공직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보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아무래도 여유로와졌다. 가족과도 좀 더 시간을 보낸다.
-중점을 두는 분야는?
▶납세자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줘야 하는 직업이다. 공직과는 새로운 세상,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다. 안에서 보던 것과 밖에서 보는 게 같지 않다. 일의 성격이 180도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세무사로서 충실하게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고, 진정한 세정의 동반자로서 담담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실한 납세자에게 팁을 준다면?
▶납세라는 게 워낙 전문적인 분야다. 기본적인 지식이나 상식 같은 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절세하고, 권리 주장이 가능하다. 국세청 국세상담센터나 세무서 민원봉사실에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친절하게 잘 안내할 것이다. 세무사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그런 만큼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하다.
-조사통(通)으로 일했다. 기억나는 일은?
▶공직 생활 초기 세무서 과장으로 있을 때다. 세무조사를 받던 한 분이 늘 소형차를 타고 왔다. 담당 팀장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니 납세자 말을 모두 믿지는 말라고 했다. 조사가 끝난 뒤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당시 귀한 외제차를 타고 있었다. 속은 듯한 마음이 들었고, 그 뒤 부터 외관을 보고 납세자를 평가하는 것을 조심했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소형차로 갈아타고 세무조사를 받으러 온 행태도 이해하게 됐다. 다양한 일을 겪고 나서야 삶의 지혜가 쌓인다는 걸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조금이나마 배웠다.
-서울지방국세청 재직 시절 국세청의 '닮고 싶은 상사'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비결은?
▶중간 관리자로 공직을 시작했으니 연세가 좀 드신 분들과 일해야 했다. 조심스럽게 예의 바르게 처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직원들이 동생뻘이 됐다.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고자 했다. 업무뿐 아니라 집안 일 같은 것에 관심을 갖고 챙겨주다 보니 닮고 싶은 상사가 된 모양이다.

조 대표세무사는 자신에게 힘이 돼준 한마디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 여백에서 스스로 찾아보라는 권유가 읽혔다. 다만, 어떤 말 이상으로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던 어머니의 기대가 큰 힘이 됐다고 토로했다. 조 대표세무사는 "한국 사회의 갈등이 일시적일 것으로는 보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며 존중과 배려를 강조했다. 상대 편 입장이나 처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대구지방국세청장 재임 중 무리한 세무조사로 납세자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 역량을 드러낸 바 있다. 존중과 배려야말로 세정(稅政)과 납세자 권익 보호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조화와 균형점을 찾게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성숙한 개인, 함께하는 사회를 꿈꾸는 면모를 엿보게 한다.
-특강이나 언론사 기고가 활발한 편이다. 주로 전하는 메시지는?
▶요청이 많지는 않다. 강의해 달라, 글을 써 달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 이런 부분을 정리한다. 국세공무원교육원장 시절 특강할 기회가 생기면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좀 살면 어떨까라는 요지의 강의를 하곤 했는데 반응이 크게 나쁘진 않았다.
-애서가라서인지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은데.
▶무엇보다 갈등이 걱정스럽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술발전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일시적 혼란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역사의 경험에 비춰보면 현재의 혼돈 시대가 지나면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거다. 혼돈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옳음과 그름이라는 경직된 잣대로 타인을 재단해선 안 된다. 비판은 줄이고, 경청을 늘리는 삶의 자세로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관대·공감·연민·진실함 같은 걸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면 좋겠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새 열차'로 갈아탈 것을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게 중요한 건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먼저 저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친인척과 주변 친구들에게 의미가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냥 이대로 계속 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다둥이 가정인데.
▶개념이 없었던 거지, 하하. 재미교포인 제 처도 그렇고…. 38세에 결혼해 41세에 첫째를 봤다. 2~3년 간격으로 3명이 더 생겨 49세에 딸 셋·아들 하나, 4명의 아빠가 됐다.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은 데 염려를 해주는 분도 있다. '어떻게든 잘들 자라 주겠지요'라고 슬쩍 마무리 짓는다.

-다둥이 아버지로서 저출산 문제에 대해 조언 한다면?
▶늦었지만 정부가 지난 2021년 제4차 5개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기본패러다임을 '개인의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했다. 금전을 지원하고 보육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필요조건이지만 아이를 갖게 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높이도록 지원하는 게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본다. 앞으로 보다 진정성 있게 대책을 수립하고 유연하게 집행해 나가길 바란다.
-서울에서 출향 대구경북인들과 모임은?
▶특별한 모임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고교 동창들과는 자연스럽게 만난다.
-스펙이 화려하다. 반면 흙수저 고향후배도 많다. 이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달라.
▶인생은 마라톤 같은 거다. 무언가 선택을 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어려움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극복해 내야 한다. 나는 힘들 때면 운동을 많이 했다. 달리기가 우울증 약보다 효과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또 좋은 책 3~4권 놓고 10분이든, 20분이든 펼쳐봐라. 잠언집 처럼 마음에 다가온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힘이 생긴다.

◆조정목 대표세무사 누구
세상(稅上)에서 '조사 스페셜리스트' '세법 마이스터'로 불렸다. 경주가 고향으로 대구 영신고·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행시 38회로 공직을 시작했다. 대구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소득지원국장·국세공무원교육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중부국세청 성실납세지원국장·부산국세청 조사2국장 등 세원 관리와 조세특례 및 감면·굵직한 조사업무를 총괄한 세법 전문가다.
또 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 시기 납세자 권익보호를 위해 엄정한 준법절차 과정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서울국세청 조사팀장과 포항세무서장·김천세무서장 등 고향의 세정 일선에서 숱한 납세자와 접하며 체득한 결과물이다. 철두철미한 업무 처리 능력과 부드러운 인품으로 정평 나 있다.
대학생·고교생·중학생·초등학생 자녀를 둔 진기록의 보유자다. "아들 보려고 그랬느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 데 그 때마다 "셋째가 아들"이라고 답한다.
'새 열차 타고 다음 목적지 향해 열심히…'라는 퇴임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언젠가 다시 한 번 환승해 무언가 더욱 의미있는 역할을 해주기 바라지만 조 대표세무사는 말을 아꼈다. 그런 모습에서 그가 좋아한다는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가 떠올랐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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