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격↑, 용량↓ 탐욕의 식품사들 3분기 이익 ‘1조원’…유통 '이마롯쿠' 영업이익률 보다 3배 높아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정부는 라면, 빵, 우유 등 가공식품 가격을 일일 감시 대상에 포함한 바 있다. 라면 물가는 1년 전 대비 1.5% 하락했지만 2년 전보다 10.0% 높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정부는 라면, 빵, 우유 등 가공식품 가격을 일일 감시 대상에 포함한 바 있다. 라면 물가는 1년 전 대비 1.5% 하락했지만 2년 전보다 10.0% 높다. 연합뉴스

고물가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지만 주요 식품 상장사들은 이익 불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주요 식품 상장사들이 원자재 가격 하락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음에도 지속적인 가격 인상은 물론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소비자를 농락한 결과 올 3분기 영업이익률이 크게 뛰었다.

15일 국내 주요 식품 상장사 16곳 공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3분기 영업이익은 총 1조222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8천944억원) 대비 14.3%나 증가한 수치다. 평균 영업이익률은 6.7%로 전년(4.9%)보다 1.8% 올랐다.

특히, 해태제과(247%), 농심(103.9%), 오뚜기(87.9%), 매일유업(63.7%) 등은 전년보다 50% 이상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유일하게 영업적자를 낸 기업은 16개사 가운데 남양유업(56억원 적자) 뿐이었다. 식품사 맏형인 CJ제일제당의 영업이익의 경우 전년 대비 28.8% 하락했지만, 해외 매출을 제외한 햇반과 비비고 등 주요 식품사업만 놓고보면 오히려 2천341억원(영업이익률 7.8%)의 영업이익을 보였다.

식품사들이 3분기 높은 이익을 보인 것은 7월부터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2.3%에서 9월 3.7%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고 지난달 3.8%를 기록했다.

16개 식품사가 지난 2분기 낸 영업이익은 9천105억원이었지만 3개월만에 1천117억원(12.2%) 늘어났다. 상반기 전체 영업이익 규모 1조3천261억원 대비 3분기 이익규모가 77%에 이른다.

그러나 식품사들이 호실적을 누릴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서민의 팍팍한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가격인상'이라는 비판이 크다. 롯데웰푸드·동원F&B·오뚜기는 지난해부터 가공유·아이스크림·컵커피·참치캔·조미김 가격을 10~20%씩 올렸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오뚜기 케찹(28.3%), 대상 고추장(24.8%), 롯데제과 월드콘(19.4%), CJ제일제당 쌈장(18.3%)등 주요 대기업 가공식품들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크게 뛰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7월 스팸 가격을 최대 10% 인상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식품업계가 중량을 슬쩍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몰래 해왔던 것도 영업이익을 높이는데 한 몫했다. 풀무원 핫도그(500g→400g), CJ제일제당 숯불향 바비큐바(280g→230g), 동원 양반김(5g→4.5g), 오리온 핫브레이크(50g→45g) 등 주요 베스트셀러 인기 상품들은 양은 줄었지만 가격은 그대로인 상태다.

추경호 경제 부총리는 최근 이에 대해 "정직한 경영이 아니다"며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단체와 함께 집중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식품에 쓰이는 주요 원재료 가격이 하락추세인데도 식품사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대비 올 9월 말 식품에 쓰이는 주요 원재료인 옥수수(-30.5%), 대두(-9.3%), 소맥(-22%) 등이 크게 떨어졌지만, 이 기간 식품사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일각에선 "원자재 가격 변동과 관련없이 각 식품분야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가격인상에 나선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분기 기준 설탕·밀가루·즉석밥·육가공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60~78%에 달하고, 동원 참치(80%), 농심 라면(50% 이상) 등 주요 식품제조사들이 독점하는 식품 분야에서 소비자 상품 2개 중 1개 이상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식품사들은 "해외 이익과 매출 비중이 높다"고 항변하지만,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는데 식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다.

식품사들이 '꼼수'로 이익을 늘린 것과 대조적으로 이들의 제품을 판매하는 쿠팡·이마트·롯데 등 유통3사의 3분기 성적은 초라하다.

지난 상반기 394억원의 적자를 낸 이마트는 올 3분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2.6% 감소한 779억원(연결기준)을 기록했다. 5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간 쿠팡도 3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와 비교해 41% 줄어든 1천146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쿠팡의 조정 에비타(상각전 영업이익) 마진은 3.9%로 전년과 비슷했고 전분기와 비교해 1.3% 줄었다. 그나마 롯데쇼핑이 3분기 유통업계에서 가장 많은 1천42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전년과 비교해 5.3% 감소했다.

이른바 이마롯쿠(이마트·롯데·쿠팡) 유통3사의 3분기 평균 영업이익률은 2.1%에 그쳤다. 3분기 영업이익 상위 빅3 식품업체(CJ·오리온·롯데)의 합산 영업이익은 4천590억원으로, 유통 빅3(롯데쇼핑·신세계·쿠팡) 3천884억원보다 700억원 많이 벌어들였다.

영업이익률 측면에서도 식품사의 평균이 유통사 평균보다 3배 높았다.

이 같은 식품사와 유통사간의 대조를 두고 전문가들은 주요 식품 분야를 독과점하고 있는 식품업계의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 상승)이 유통업계 수익성 저하로 이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선 제조사들이 주요 상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행태가 유통사 이익의 동반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소비자 저항을 고려한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A제조사가 1만5천원 판매가를 책정한 상품을 유통사에 납품을 해도 유통사는 시장 변화, 소비자 저항을 고려해 가격을 1만2천~1만3천원에 파는 경우도 적지 않아 유통사의 마진 축소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식품사들이 3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이익이 늘어났다는 것은 유통사의 수익성 저하와 비례한다"며 "식품사들이 고물가 시대에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가격 상승을 주도해 유통사들에게 적자분을 떠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식품사들이 대외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배불리기'에 나서는 것은 궁극적으로 소비자 혜택을 크게 저하하고, 국내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이달 기준으로 생활용품 27개 품목 80개 제품 중에 절반이 넘는 41개 제품 판매가가 지난해 11월보다 올랐다. 우유(14.3%), 설탕(17.4%), 아이스크림(15.2%), 커피(11.3%)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식품사들의 영업이익은 올 4분기에 더 폭증할 가능성도 있다"며 "정부와 시민단체가 제조사-유통사 간의 불균형을 해소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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