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추상(春風秋霜). M&A(인수합병) 시장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병국 소시어스 프라이빗 에쿼티(Private Equity) 대표이사는 내내 자신을 낮췄다. 첫 인상은 부드러웠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냉철하고 예리하게 느껴져 간단치 않은 내공을 엿보게 했다. 이 대표는 "소시어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수자나 매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투자로 이어가는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반칙이 없지 않은 투자시장에서 선(善)한 개입과 영향력만이 상생의 길이라는 말로 들렸다. 대구경북의 젊은이들을 향해선 "학벌이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끈기 있는 태도와 도전을 당부했다.
-어떤 회사인가?
▶시장에는 PEF 운용사로 알려져 있다. 회사 설립 때는 국내 M&A 시장에도 전문성을 가진 자문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첫 걸음을 뗐다. 설립 이후 대규모 M&A와 주요 기업의 구조조정 거래를 자문해왔다.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배가하기 위해 뛰었다. HSD엔진과 두산 모트롤 인수 등을 계기로 소시어스의 자문 업무 전문성이 투자로 이어가도록 하는 작업을 적극 진행 중이다.
-강점이나 경쟁력은?
▶소시어스는 라틴어 명사로 파트너‧형제‧동반자 같은 뜻을 담고 있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포스코‧한국중공업 등의 공기업 민영화 작업과 함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계열사 매각작업에 인수‧매각 자문을 제공해왔다. 이 과정에서 투자로 파생될 다양한 사회적 영향까지 고민하고 감안하면서 구현하려는 동반자 정신이 아닐까.
-사모펀드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PE 운용사는 소수의 고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 등을 인수하는데 투자하고 기업체질 개선 등을 매개로 기업가치를 높인 후 지분을 매각하여 고수익을 추구하는 장기투자 전문기구다. PE의 주목적은 경영권 참여로 사업구조나 지배구조 개선 등을 하고 기업 가치를 올려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펀드에서 필요 시 차입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른 투자기구와 차별화된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펀드와는 다른 구조다.
-이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산업은행에서 M&A 업무를 담당했다. 빅딜을 많이 하면서 구조조정이나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러다보니 좀 더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싶었다.
산은 M&A실 창립 주역인 이 대표는 재직 시 혁혁한 전과(戰果)를 올렸다. 대표적인 게 진로 M&A. 대한민국 주류시장의 판도를 일거에 바꾼 이 빅딜에서 그는 시장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 하이트의 진로 인수를 성공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투자시장에서 "빅딜을 하려면 산은 이병국 차장을 찾아가라"는 말이 돌게 된다. 소시어스 합류 뒤에는 신한금융지주의 LG카드 인수로 또 한번 이름을 떨쳤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외국계 IB(투자은행) 업계에서는 그를 한국 M&A시장의 '마에스트로'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날고 긴다는 투자업계 최고수들이 인정하는 M&A를 고리로 한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의미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1호 저비용항공사(LCC)인 한성항공이 사라질 위기에서 지금의 티웨이항공으로 생존시키는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대구에 본사가 있는 티웨이항공 인수 비화가 궁금하다.
▶다들 반대했다. 여러 군데서 시장 조사를 하고 분석을 했다. 그런데 대형항공사 관계자들이 그러더라. '왜 외국 가려고 하는 줄 아느냐. 비행기 탄 자랑하려고 그런다' 한마디로 저가항공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는데 난 정반대로 봤다.
-대구경북에서도 적지 않은 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향토기업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헐값 매각되는 상황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아쉽고 안타까웠다. 세상, 특히 M&A시장에 호의만 있는 게 아니다. 정보가 부족하고 판단력이 흐려지면 많은 걸 잃는다.
-그동안 어려움은?
▶M&A 인수전에서는 늘 불확실성과 마주한다. 하지만 입찰하면서 지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다. 보통 자문하는 사람은 고객에게 단언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잘못되면 다 뒤집어써야 하니까. 입찰가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금액 대신 5~7만원 식으로 제시하는 식이다. LG카드 인수 때 100원 단위까지 적어냈다.
-경영 철학은?
▶후배들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거다. 회사가 시장에서 탄탄히 자리매김하도록 제가 선배로서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후배들이 잘 활용해서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글로벌 시장 추이를 지켜보는 일이 만만치 않을 텐데.
▶항상 어떤 딜을 하고 있다. 딜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딜을 발굴하려고 사람들을 만나고…. 투자한 회사의 포트폴리오, 경영 상황과 현재 하는 일의 프로세스를 체크‧관리하는 이런 일들이 아침부터 저녁 또는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그런 일상이다.
-강의를 활발히 하는 반면 언론 노출도가 적은 이유라도 있나?
▶강의는 예전에는 열심히 했는 데 요즘 크게 줄였다. 언론과는 전화도 잘 받지 않고 통화하더라도 '잘 모른다'고 하며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심층기사를 쓰려 한다거나 어떤 사안이 벌어졌을 때는 시장에 올바른 정보를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해 분석하거나 전망해 드린다.
-이 분야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들려 달라.
▶물론 이 시장에도 학벌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 학벌이나 집안이 좋으면 진입에 있어 유리한 건 분명이다. 다만 그게 절대 다는 아니다. 미리 주눅들 필요 없다. 실력으로 승부하면 얼마든지 자리 잡을 수 있다. 때로 서러움이 있겠지만 견뎌내면 보상은 어느 시장 보다 크다. 끈기 있게 노력하는 그런 태도와 실력을 갖춰라. 성실‧끈기‧책임감을 갖고 승부사처럼 일하면 2년 업무한 친구가 10년 경력자를 이긴다.

◆이병국 대표 누구
대구가 고향이다. 대륜고와 경북대 법학과를 거쳐 산업은행에서 일했다. 1990년 입행해 계열그룹 여신심사를 담당했고, 종합기획부에서 중장기 경영계획 수립과 조직 관리를 했다. 특히 M&A실 설립 멤버로 활약했다. 얼마나 극성으로 일 했던지 부인으로부터 "그러려면 무엇 하러 국책은행에 들어갔느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였다.
소시어스로 옮긴 뒤에는 금융연수원‧증권연수원‧기술거래소‧능률협회‧생산성본부‧고려대 MBA ‧하나은행‧한전 등에서 M&A연수과정 강사로 명성을 날렸다. 저서 'M&A이론과 실제', 논문 'M&A시장과 재무적 투자자의 역할'로 주목받았다. 포스코와 한국중공업 민영화 공적을 인정 받아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올해의 산은인‧하이트맥주의 진로인수로 그해 아시아 올해의 딜 상 등을 수상했다.
은근과 끈기‧태도를 중시한다. 이 대표는 멀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 법칙'을 언급하며 꾸준히 최선을 다하면 전문가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몰입(미하일 칙센트미하이)' 같은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조언이다. 스스로도 산은 재직 시절 M&A실 신설을 내다보고 관련 분야 공부를 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해온 것이 오늘의 이 대표를 있게 했다.
한국교직원공제회·지방행정공제회 투자심의위원회 위원과 한투신성장 1호스팩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소시어스를 이끄는 것 이외에 엔셀 대표이사‧다양산업 대표이사‧모트롤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