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어머니 면허증은 따셨나요?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단어, 어머니

문화해설사 우남희 씨의 어머니 고(故) 배달선 씨

가족들과 즐거운 한 때(왼쪽 두 번째가 필자, 네 번째가 어머니 고(故) 배달선 씨). 우남희 제공
가족들과 즐거운 한 때(왼쪽 두 번째가 필자, 네 번째가 어머니 고(故) 배달선 씨). 우남희 제공

저는 우리 집 옥상에 자주 올라 갑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 산소가 있어서 입니다. 산소를 보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알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마음을 추스르곤 합니다. 당산 밭에서도 산소가 보입니다.

예전에 우리 밭은 이웃 논에서 객토한다면 우리 밭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함께 객토를 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폐기물이 섞인 흙으로 객토한 걸 알고 멀쩡한 밭을 망쳤다며 기막혀하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생각 끝에 돌을 골라내기 위해 고향으로 출퇴근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저는 주말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쉬라고 하지만 어머니가 돌을 골라내는데 딸인 제가 어떻게 쉴 수 있겠느냐며 투덜거리곤 했습니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있듯 어머니와 준비 없는 이별을 하고 나서야 그렇게 투덜거린 것도 후회가 됐습니다. 어머니와 돌을 골라낼 때의 그 경험을 훗날 동시로 썼는데 모 신문에 실렸답니다.

'산밭에 고구마 심기 위해/ 돌 골라내고/ 흙 잘게 부수며/ 할머니, 혼잣말하신다// 버릴 건 버리고/ 덩어리는 풀어야/ 너도 살고/ 나도 살고//'('혼잣말' 전문)

어머니, 아침저녁으로 전화하다가 전화를 못해 늦은 시간에 전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신지 목이 잠겨 말을 못했었지요. 알고 보니 그날따라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고, 문지방이 닳도록 오시던 이웃 친구도 오지 않아 그런 거라고 했습니다. 화가 나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시어머니가 놀라 무슨 일이냐며 제 방문을 두드릴 정도로 말입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적적함을 달래드리기 위해 친정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현관에서 "어머니!" 하고 부르니 무슨 일이냐며 놀라 버선발로 뛰어나오셨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해집니다.

어머니, 전국민편지쓰기대회에서 '자전거를 타시는 어머니께'로 상 받은 것 기억하시죠?

한쪽 눈이 실명되기 전, 자전거를 타고 고향 들판을 달리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시상식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는데 실명으로 의욕을 잃었을 때라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후회스럽습니다.

어머니가 계셨을 때 '달성관광'투어나 '달리고'투어 해설사로 활동하였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드리는 건데 한참 뒤의 일이라 그러질 못했습니다. 고객 중에 모녀지간이나 고부간에 오시는 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아름다운 동행'을 하신분이 있다며 고객들에게 소개하고 남은 사은품 하나를 챙겨드리곤 했답니다.

저는 동네 친구와 결혼했습니다. 친구관계였던 어머니와 시어머니, 언니와 셋째 시누이, 동생과 막내 시누이가 사돈이 되면서 편한 사이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향에 오셔도 경로당에서만 놀다가 가시고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 드시고 간 적 없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어깨너머로 글을 깨친 어머니는 책볼 틈이 없음에도 운전면허증을 따겠다고 책을 구입하시고는 OMR 카드 작성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시험을 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한 문제에 정답 하나만 기표해야 하는데 답안 작성을 해본 적 없어 처음부터 차례로 기표해 빵점 받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해 제게 손을 내밀었던 겁니다. 그 후로 두 번 더 시험을 쳤는데 어머니의 도전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하겠다면 하시고야마는 어머니, 하늘나라에서 그때 못 딴 면허증을 따셨나요?

요즘 저는 어머니에게 매일 전화하던 것처럼 언니와 동생에게 전화합니다. 삼남매 톡을 만들어 서로 안부도 주고받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어머니!'라고 부르기만 하는데도 눈물이 납니다. 많이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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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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