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뢰 밟아 한쪽 다리 잃었던 군인…40여년뒤 세계 최고 태권 고수로 등재

택시기사 김형배씨, 세계 장애인 태권도 최고인 7단…영국 기네스협회 인증서 보내와
"캄캄하던 절망의 시절, 방황, 고통, 태권도 재도전 등 기억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뒤돌려차기 격파 김형배씨가 지난 1월 24일 기네스북 도전을 위해 태권도 뒤돌려차기로 3단 연속 격파를 하고 있다. 발차기하는 왼쪽 다리가 의족이다. 연합뉴스
뒤돌려차기 격파 김형배씨가 지난 1월 24일 기네스북 도전을 위해 태권도 뒤돌려차기로 3단 연속 격파를 하고 있다. 발차기하는 왼쪽 다리가 의족이다. 연합뉴스

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었던 24살 청년이 40여년이 흐른 뒤 장애인 태권도 세계 최고수로 다시 태어났다. 주인공은 부산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김형배(65)씨.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일 영국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 장애인 태권도 최고단자' 인증서를 받았다. 2019년 6월 태권도 7단에 승단했던 그가 최근 신청한 기네스 협회 심사를 통과한 것이다.

그는 앞서 지난 1월 24일 오후 8시 부산 동부수정체육관에서 기네스북에 도전했다. 이상정 부산태권도협회 원로회의 회원(공인 9단), 송화수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 자문위원(공인 9단) 등 두 명의 증인과 선후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한 발차기, 품새, 격파, 겨루기 등을 영상으로 찍어 영국 기네스 협회로 보냈다.

그의 이번 기네스 도전은 절망을 딛고 이뤄낸 인간승리로 평가된다. 그는 1983년 제대를 한 달 앞두고 상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비무장지대 수색 근무에 참여했다가 지뢰를 밟아 왼쪽 무릎 아래 다리를 잃었다. 헬기를 타고 도착한 병원에서 다리를 자를 때의 상실감은 어린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보름간 고통을 견디다 결국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잘라냈다고 한다. 태권도 사범과 액션 배우를 꿈꿨던 그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제대 후 3년 내내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해 동아대학교에 들어갔고 부산교통공사 공채에 합격한 후 결혼해 1남 1녀를 둔 가정도 꾸렸다. 그리고 마흔살에 의족을 달고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태권도를 재개하며 4~7단을 차례로 땄고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했다. 그는 자신이 의족 장애인으로 태권도 최고단자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돼 기네스북에 뒤늦게 도전하게 됐다.

김씨는 연합뉴스를 통해 "한쪽 다리를 잃은 후 의족 장애인이 태권도를 하는 경우를 본 적도 없었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위험하게 태권도를 한다고 만류했다. 그렇지만 정년까지 역무원 일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해 태권도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다리를 단련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의족을 찬 다리는 물집이 생기고 상처가 났다. 상처가 나으면 다시 달리고 체육관에 나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차츰 발차기가 안정되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태권도 전국대회에서 입상하고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네스월드레코드에 기록 보유자로 등재돼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쁘다. 의족 장애인으로 살면서 허약해진 건강과 앞이 캄캄하던 절망의 시절, 방황, 고통, 태권도 재도전 등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군 복무를 하다 다리를 잃었지만, 나의 희생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다. 군 시절 휴전선에서 북한과 마주하며 자유의 소중함으로 절실히 느꼈다. 택시를 타는 젊은 친구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놀라고 감동했다고 말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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