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업 현장부터 식당까지 "중대재해법? 준비는 아직"

50인 미만 사업장 대상 중소기업 99% 대구지역 산업계 불안감 여전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식당·미용실 "법 적용 대상인지 몰라"
상의·경총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 대구시 중대재해예방과 신설

26일 대구 북구 노원동 3공단 내 한 제조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부품을 선별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6일 대구 북구 노원동 3공단 내 한 제조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부품을 선별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1월 말부터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전면 시행됐다.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 산업계 곳곳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50인 미만(5~49인) 사업장에도 관련 법이 적용됨에 따라 소기업·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중소기업현황조사에 따르면 대구지역 전체 사업체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9.9%에 이른다. 50인 미만(제조·운수·건설업 등) 소기업에 해당하는 사업체는 98%다. 중대재해법 대응 여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사업주가 처벌을 받을 경우 폐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에서는 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또 재해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요구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 산업계 "대비해도 불안감은 여전"

지난 25일 찾은 대구제3산업단지 내 대성금속공업 본사. 자동차 부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공장 내부는 분주한 분위기였다. 각 생산 라인마다 품질을 확인하고 분류에 맞게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35명. 김현수 대표는 지난해부터 시설을 재정비하고 안전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등 필요한 조치는 취했지만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

김 대표는 "기본적으로 재해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했다. 시설·장비도 갖추고 무엇보다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고 최대한 직원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다 보니 혹시 모를 사고가 염려된다"고 했다. 이어 "법 자체의 취지는 공감을 하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재정적으로 한계도 있고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조금 여유를 주고 제도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섬유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고물가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된 탓에 대응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예방점검을 위해 각 업체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려움이 크다"면서 "인력 보강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데 우왕좌왕하는 실정이다. 공단 차원에서도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우각 대구경북중소기업회장은 "안전관리 담당자를 선임하고 교육을 받고 재해를 예방하자는 차원인데 기본도 갖추기 힘든 경우가 대다수"라며 "사업 규모에 상관없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압박이 심하고 불안감이 커서 사기를 상실시킬 우려도 크다. 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 더 줬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대구시는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대구시 제공
지난해 10월 대구시는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대구시 제공

◆ 적용 대상 확대···경제단체·지자체 지원 활발

중대재해법은 제조업 외에도 5인 이상 근로자를 둔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식당, 카페, 미용실 등도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역 내 사업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상시 근로자가 5인 이상인 동성로 미용실에서 일하는 A씨는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는 모두 프리랜서라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취재진이 중대재해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알지만 그런 법은 모른다"며 선을 그었다. 반월당역 인근 프랜차이즈 중식집에서 근무하는 B씨 역시 "본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안전 조치를 강화하거나 지침을 내리는 경우는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는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중대재해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안전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고용노동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재해예방과 법 준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방안 및 정부지원제도 전국 순회설명회'를 개최한다. 27일 목포를 시작으로 다음 달 17일 대구 등 전국 38개 지역 상공회의소에서 설명회를 진행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안전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대재해 종합대응센터'를 공식 발족했다고 26일 밝혔다. 센터는 법률상담과 안전관리 매뉴얼·가이드 등 안전보건 자료 제공, 중대재해 예방 교육과정 운영, 대·중소 안전보건 상생협력 활동 등을 추진한다. 또 컨설팅과 교육, 진단 등 정부 산재예방사업 연계 지원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경총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으로 중소·영세기업 안전 관리와 사법 리스크 부담이 커졌고, 현행 정부·안전보건공단 주도의 예방 사업만으로는 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 조직을 통해 다양한 산재예방 지원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구시는 지난해 재난안전실 산하 중대재해예방과를 신설하고 지역 중소기업의 안전관리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 위험성 평가 컨설팅 지원, 산업단지별 찾아가는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교육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700개 기업이 참여 의사를 밝히는 등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경재 대구시 중대재해예방과장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협업을 통해 산업안전보건 우수기업을 올해 처음 선정할 예정"이라면서 "우수 기업으로 선발될 경우 경영안전자금 이차보전 지원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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