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꿈결 같은 천상의 정원 페어리메도우

세계에서 9번째 높은 산봉우리 앞…히말라야삼나무 숲·곳곳 통나무집
예쁜 엽서 그림 같은 풍경 보유한 곳…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들도 거주

저수지 페어리레이크에 8,125m의 낭가파르바트의 웅장함과 라이코트빙하가 반영돼 색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저수지 페어리레이크에 8,125m의 낭가파르바트의 웅장함과 라이코트빙하가 반영돼 색다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 변화 무쌍한 북부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길

첫 버스를 타기위해 일찍 배낭을 메고 새벽에 나섰으나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출발한 낡은 버스는 산맥 속으로 구름처럼 천천히 이동한다. 페어리메도우(Fairy Meadow)를 향해 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북부파키스탄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산중에 풀이나 나무보다 곳곳이 무너져 내린 산사태의 흔적이 더 많다. 여기저기 만년설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과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풍성한 구름이 모든 것을 평화로움으로 채색하고 있다. 덜커덩 거리는 버스를 타고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페어리메도우를 향해가는 길에 나타난 루루시르 호수의 거울 같은 물이 주변의 눈 덮인 산을 반영하여 아름다운 풍광을 여행자들에게 제공한다.
페어리메도우를 향해가는 길에 나타난 루루시르 호수의 거울 같은 물이 주변의 눈 덮인 산을 반영하여 아름다운 풍광을 여행자들에게 제공한다.
4,173m의 바브사르 패스 도로 양쪽에는 눈들이 쌓인 빙벽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4,173m의 바브사르 패스 도로 양쪽에는 눈들이 쌓인 빙벽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눈앞에 나타난 루루시르 호수(Lulusir Lake). 거울 같은 물이 눈 덮인 루루시르 산을 반영하여 자연 관광명소를 만들어준다. 버스는 잠시 허기진 배를 달래줄 기회를 이곳의 풍광과 함께 여행자에게 제공한다.

버스는 해발4,173m의 바브사르 패스(Babusar Pass)를 힘겹게 오른다. 도로 양쪽에는 눈 쌓인 빙벽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버스는 5시간을 넘게 달려서 마을입구 호두나무아래 찻집에 도착하고서야 멈춘다. 300년이 넘었다는 우리나라 당나무 같은 호두나무가 여행자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불과 몇 시간 만인데도 삭풍의 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변한 듯한 계절의 날씨가 호두나무 그늘아래 여행자를 쉬게 한다.

고개를 넘고, 황무지 같은 산자락을 지나 계곡을 내려가니 인더스강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버스는 인더스강을 따라 내려간다. 한참을 더 가니 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라이콧이라는 곳에서 내렸다. 여기서 부터는 4륜 지프를 합승해서 페어리메도우로 올라가야 한다.

페어리메도우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깍아지른 절벽 길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로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어난다.
페어리메도우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깍아지른 절벽 길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로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어난다.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옥의 길

라이콧(Raikot) 다리 부근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무그늘 밑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과 어우러져 체스를 즐기며 지프 동승자를 찾았다.

페어리메도우는 라이콧 다리에서 시작하여 타토(Tato)마을까지 이어지는 9km의 높은 산허리를 따라 가는 위험하고 좁은 길을 지프로 올라간다. 이 길은 페어리메도우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험준하고 아찔하기로 악명 높은 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도로를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도로로 선언했다고 한다.

지프를 타고 가는 산 절벽길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심장병이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행자는 재고해달라는 지프차 기사의 엄포도 있다. 지프가 라이콧 계곡 안쪽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계곡 절벽은 너무 깊고 위험해 내려다보기만 해도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행여 지프 밖으로 튕겨져 나가 저 아득한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차 안에 있는 손잡이와 의자를 꽉 붙잡고 앞만 응시하고 있다.

절벽을 깎아 만든 계곡에 나무다리로 지프차가 넘나들다 사고가 나서 이제는 우회를 하는데도 아찔함에 두 눈을 질끈 감게 되었다.
절벽을 깎아 만든 계곡에 나무다리로 지프차가 넘나들다 사고가 나서 이제는 우회를 하는데도 아찔함에 두 눈을 질끈 감게 되었다.

지프를 타고 오를수록 길은 더 아찔하다. 지프 한 대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길은 간담을 서늘케 한다. 타이어가 살짝만 밀려나도 그대로 이승과는 생이별인 지옥길이다. 깎아지른 절벽 밑은 천 길 낭떠러지였다. 간이 콩알만 해졌지만 지프 기사는 능수능란했다.

지프 기사는 보닛을 열고 물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잠시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니 오금이 저려왔다.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지프에서 내려 페어리메도우까지는 아름다운 꽃길로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낭가파르바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프에서 내려 페어리메도우까지는 아름다운 꽃길로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낭가파르바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페어리메도우로 가는 길에는 여행자를 위한 찻집이 아름다운 풍광을 음미하게 한다.
페어리메도우로 가는 길에는 여행자를 위한 찻집이 아름다운 풍광을 음미하게 한다.

절벽 길을 올라오며 숨을 몰아쉬는 사이 타토마을에 도착했다. 라이콧 다리로부터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페어리메도우까지는 약 5.5km 거리를 올라가는 트레킹코스다. 산길은 전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지고 예쁜 꽃들도 피어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2시간 정도를 걸어 올라가니, 조그만 나무판으로 만든 숙소 간판들이 세워져 있다. 석양빛에 물들어가고 있는 낭가파르바트와 라키오트빙하가 한눈에 들어오는 숙소에 도착했다.

황량한 산과 계곡 안쪽에 있는 천상의 정원과 같은 '요정의 초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페어리메도우 마을.
황량한 산과 계곡 안쪽에 있는 천상의 정원과 같은 '요정의 초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페어리메도우 마을.

◆요정들이 살 것 같은 요정초원 페어리메도우

해발3,300m의 페어리메도우 초원은 '동화 같은 초원'이라며 독일인들에 의해 명명되었다. 낭가파르바트의 베이스캠프 중 하나로 라키오트(Rakhiot)빙하를 따라 정상에 오르는 트레커들의 출발점 역할을 한다. 1995년 파키스탄정부는 페어리메도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하늘과 연결된 곳인지도 모를 천상의 고원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올라오면서 느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배낭여행자들의 자유스러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깊은 산중의 낭가파르바트의 설산을 한눈에 보며, 힘든 여정을 잊게 한다.
깊은 산중의 낭가파르바트의 설산을 한눈에 보며, 힘든 여정을 잊게 한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곳, 어쩌면 하늘과 연결된 곳인지도 모를 천상의 고원 페어리메도우에서 낭가파르바트의 풍경을 만끽한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곳, 어쩌면 하늘과 연결된 곳인지도 모를 천상의 고원 페어리메도우에서 낭가파르바트의 풍경을 만끽한다.

숙소 바로 앞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봉우리인 8,125m의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의 웅장한 설벽과 시커먼 라키오트빙하가 보인다. 주위로는 아름다운 전나무와 히말라야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곳곳에 통나무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숙소 앞 초원에는 모닥불이 피워지고, 다국적 여행자들이 모닥불 주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래가 나오기 시작한다. 흥이 오른 여행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서 모닥불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강강술래 춤사위는 일순간 파키스탄 전통춤이 된듯하다.

이튿날 호젓한 숲길의 산등을 넘어 페어리메도우에 있는 저수지 페어리레이크를 찾았다. 작은 호수엔 낭가파르바트가 그대로 담겨 있어 예쁜 엽서그림이 따로 없다. 세상과 격리되어 문명과 동떨어진 곳이지만 때 묻지 않은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 파라다이스 페어리메도우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아예 자리를 펴고 앉았다.

페어리메도우에서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코스는 조금만 걸어도 아름답고 놀라운 환상적인 풍광이 이어진다.
페어리메도우에서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코스는 조금만 걸어도 아름답고 놀라운 환상적인 풍광이 이어진다.

◆ 천상의 화원을 가는 낭가파르바트 트레킹

이른 아침 낭가파르바트의 꼭대기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한 태양이 서서히 요정의 초원을 거쳐 산비탈과 계곡까지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낭가파르바트는 산스크리트어로 '벌거벗은 산'을 의미하는데, 이 지역 원주민들은 '산들의 왕'을 뜻하는 디아미르(Diamir)라고 부른다.

낭가파르바트는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서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다. 근처의 검은색 빙하(Black Glacier)를 볼 수 있으며, 5시간 정도 더 위쪽으로 등반하면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에 도달할 수 있다.

페어리메도우에서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코스는 조금만 걸어도 아름답고 놀라운 환상적인 풍광이 이어진다.
페어리메도우에서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코스는 조금만 걸어도 아름답고 놀라운 환상적인 풍광이 이어진다.

낭가파르바트는 이름만큼 정말 변화무쌍한 산이다.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가는 길은 갈수록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선다. 처음에는 빙하에 숲길이 펼쳐지다가 곧 침엽수림이, 그 후에는 초원이, 그러다가 산장들이 있는 산 아래의 풍경이 펼쳐진다.

얼마를 갔을까, 절벽에 거대한 빙하가 우르릉 천둥소리를 내며 트래커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현지 트래커들이 베이스캠프를 가려면 빙하를 지나기 때문에 포터나 현지인을 대동해서 가야 된단다. 안 그러면 언제 빙하에 빠져 죽을지 모른다고 알려준다.

갈수록 빙하의 규모가 엄청나고, 그 빙하가 내는 소리는 트래커를 잡아먹을 듯하다. 여기에 시시각각으로 눈발이 날리고, 강풍이 몰아친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니 거짓말처럼 맑아지는 하늘, 낭가파르바트는 여행자가 만난 산 중 가장 변화무쌍한 산이었다.

안용모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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