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51.7㎝ 길이의 괴이한 투표용지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2대 총선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직능대표 추천으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켰음이 확인됐다. 재판 중인 정치인의 방탄 용도나 명예 회복 용도로 급조된 정당의 의석 확보 도구로 전락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명분은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 활성화였다. 그러나 이번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소수 정당의 진입 통로는 확장되지 않았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두 곳만 선택받았다. 이 중 조국혁신당은 소수 정당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의 몫을 배정한 더불어민주당 주축의 더불어민주연합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정파의 입맛에 맞는 비례정당의 원내 입성에 안전판을 마련해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기가 막히는 광경이었다. 조국, 황운하 등 재판이 진행 중인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비례대표만 노렸다. 24%의 득표율로 1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창당 한 달 만에 제3당이 됐다. 준연동형에 사활을 걸었던 녹색정의당은 원외 정당이 됐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헷갈리고 복잡하다는 비판은 진작에 나왔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의석 계산법을 알 필요가 없다며 무시했다. 취지만 찬란했지 꼼수가 판을 쳤다. 위성정당 급조는 기본값이다. 정당 난립으로 구분이 어렵다며 선순위 기호를 받으려 현역 의원도 빌려준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공약마저 없는 일회성 정당의 난립도 막지 못한다. 전국 득표수 1만 표 이하 정당도 여럿이다. 준연동형이 시행된 21대 총선의 정당 수는 35개, 이번에도 38개였다. 51.7㎝ 투표용지는 유권자에게 폭력이다.

준연동형의 의의를 살린다며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순진한 발상이다. 정당의 태생은 수권이 목적이다. 한두 석에도 권력 지형이 바뀐다. 선의에 기대기 어렵다. 비례대표제의 애초 취지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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