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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4쌤의 리얼스쿨] 학교 문화와 유기성…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세 필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사회 유기체(social organism)는 사회 자체가 유기체로 간주되는 사회학적 개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실체들이 다른 실체와 상호 작용하여 필요를 충족하고 유기체의 안정성과 응집력을 유지한다는 이론이다. 유기체가 안정성과 응집력을 유지하는 현상은 가족이나 민족, 국가가 유지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가족은 사랑을 중시하고 B가족은 진실을 중시한다면, A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응집될 것이고, B가족은 위기가 닥쳤을 때 순서와 진실 규명 등에 초점을 두고 안정성을 회복할 것이다. C국가에 외침이 잦았다면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결집할 것이고, D국가가 예전에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적이 있다면 경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나라의 대표로 선출할 것이다.

학교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여러 학교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학교마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서 이를 파악하는 일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A학교의 규율이 다소 느슨하다는 소식이 인근 초등학교에 퍼질 경우, 이듬해 A학교의 지원율은 최고로 치솟는다. A학교에 응집되는 유기체의 흐름은 '노는 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걱정하는 학부모의 민심은 흉흉해지고, 자녀가 1지망에 A학교를 쓸 경우 가정 내 발화점도 최고로 치솟는다.

B학교는 규율을 엄하게 잡고 시험 문제가 어려우며 특수목적고의 진학률이 높다고 소문이 나면 학생들이 1지망을 쓰는 부류가 갈린다. 소위 모범생들이 B학교를 쓰기 시작하면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기대하는 학생들은 B학교를 쓸 것이다. 학부모도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학교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과학고는 몇 명이 가는지,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는데 우리 애는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 서울권 대학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밋빛 상상을 하게 된다.

C학교는 그저 평범하고 작은 규모의 학교라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학교가 오래돼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 보니 공사를 연이어 하더라는 소식이 있다. 분위기는 좋다고 하지만 학교가 작다는 인식이 있어 많이 선호하지는 않는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학교가 한 동네에 함께 있다면 선택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해마다 학교 배정 문제로 교육청에는 민원이 빗발치고,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일선 학교에서 애를 먹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학교의 분위기가 바뀔 때이다.

A학교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사실 많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혹은 특정인이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경우를 통해 문제가 적극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다 보면 B학교처럼 교칙이 강해지고, 학생 지도를 철저하게 하는 등 정비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학교 문화가 바뀌는 것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 걸릴 수 있다. 그러면 A학교는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학교의 문화가 될 수 있다.

B학교의 경우는 이제 힘든 일만 남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잘나가던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뜻하지 않은 일로 사라지는 예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었던 일이 특정한 사안이 되고, 그 사안이 2주 내지 3주 동안 학교 구성원의 발목을 잡고, 그렇게 발목 잡힌 일로 규정을 바꾸거나 구성원들 모두가 예민해지는 경우를 반복해서 생성하게 되면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진 공간에서는 예기치 않은 충돌도 발생된다. 모든 모범적인 학교가 이런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학부모들의 기대가 크다 보면 학교가 이에 종속되어 교육활동을 운영하는 데 에너지가 무척 낭비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면 B학교는 '민원 천국'의 학교 분위기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고, 결국 학생과 교사 모두 기피하는 학교가 될 수 있다.

C학교의 경우는 찻잔의 소용돌이처럼 학교 문화가 형성된다. 돌풍이 될 때도 있고, 그 돌풍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조용하고 소소하게 진행되어 체감을 할 때는 이미 사건이 끝났을 경우도 많다. 어떤 문화가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타격도 빠르고 회복도 빠르다.

최근 우리 사회가 분절과 평가에 몰두해 있다 보니 교육기관인 학교에도 분명한 잣대, 엄격한 심사 기준을 가지고 와서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학교는 하나의 사회다. 유기체적인 특성이 학교만큼 잘 반영되는 사회도 드물 것이다. 그 속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평가'라는 단 하나의 세상 이치로 살아가기에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

오늘날 이 학교에 분명한 성과가 있어서 그것을 미래에도 적용해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은 유기적 학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저 학교가 피폐하다고 해 향후를 기대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조직적인 학교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보다 '저 학교는 이런 모습으로 변하는 길을 열고 있구나' 하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교육활동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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