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7일 한동훈 체제'…상식‧합리‧국민 눈높이 앞세웠지만, 결과는 참패

운동권 정치 청산 등 정치개혁 아젠다·격차 해소 외치며 정치권 누벼
이재명·조국 심판 네거티브, 셀카 유세 몰두하다 총선 패배 성적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대한민국살리기' 청계광장 22대 총선 파이널 총력유세를 마친 뒤 이동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민의힘으로 대한민국살리기' 청계광장 22대 총선 파이널 총력유세를 마친 뒤 이동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향후 4년간 의회 권력의 주도권을 가른 4·10 총선에서 집권여당 선거 컨트롤 타워는 '한동훈 체제'였다. 엘리트 검사로 출발해 윤석열 정권의 핵심으로서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권 데뷔는 여론의 큰 이목을 끌었다.

여의도 문법을 탈피하고 상식과 합리,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던 한 전 위원장은 정치개혁, 격차해소 등을 앞세워 단숨에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꽃 피는 4월이 오면 국민의힘이 원내 다수당이 돼 진정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약속이 손에 잡힐듯한 국면도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라던 공천은 현역 기득권 지키기, '호떡 공천'이라는 비판을 낳았고 스피커를 독점하며 셀카 선거운동에 골몰해 총선 승리보다 대권 행보에 관심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국민들에게 비전을 선보이지 못하고 '이조(이재명·조국)심판'을 내세워 네거티브만 거듭했고 결국 총선 참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운동권 정치 청산"…정치개혁 앞장

지난해 12월 26일 취임한 한동훈 전 위원장 일성은 '운동권 정치 청산'이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이를 '시대정신'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함과 동시에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등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개혁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상식적인 국민을 대변하겠다는 뜻에서 '동료시민'이란 단어를 등장시켰고 '선당후사가 아니라 선민후사해야 한다'며 민의(民義)를 따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임기 중 정치개혁 공약은 금고형 이상 확정 시 세비 반납,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 수수 금지, 귀책사유로 인한 재보궐선거 무공천, 국회의원 정수 축소, 세비 중위소득화 등으로 확장됐다.

지난 2월 7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한 전 위원장은 정치개혁 시리즈와 관련, "진영을 초월한 국민적 요구가 있다", "포퓰리즘이 아니다. 이런 포퓰리즘이라면 기꺼이 포퓰리스트가 되겠다"며 강한 실행 의지를 피력했다.

◆정책 공약 키워드는 '격차 해소'

특권 내려놓기 중심의 정치개혁과 함께 한 전 위원장이 공을 들인 분야가 바로 '격차 해소'라는 화두였다. 지난 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총선 공약개발본부 출범식에서 그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격차를 해소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며 공약개발의 큰 틀을 소개했다.

비대위 회의 등 여러 공식 석상에서 한 전 위원장은 "교통, 안전, 문화, 치안, 건강,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고 없애는데 힘을 집중하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포의 서울 편입·경기 분도 추진 등 수도권 행정구역 개편, 철도 지하화, 반도체 산업 지원 등 각종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기저에는 '격차 해소'가 있다는 점을 선명히 했다.

지난 2월 29일 중앙당사에서 열린 여의도연구원 주최 '국민공감 정책 세미나-동료시민 일상 속 격차,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현장에서 그는 "'빈부 격차를 완전히 없애보자'라는 식으로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담론의 대결, 말의 대결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말한 격차 해소는 교통에서의 격차, 의료의 격차, 문화의 격차, 치안의 격차, 이런 현실생활에서 당장 우리가 돈과 조직, 정치의 힘을 투입해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우선순위를 정해 이번 총선 기간 제시하고 실천을 시작하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총선에 임박한 시점엔 '국회의 완전한 세종시 이전', '0세에서 12세 국가책임교육돌봄 완성' 등을 국민공약으로 제시하며 정치개혁의 완성, 교육 격차 해소에 앞장서겠다는 흐름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를 한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를 한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공천·선거운동 국면서 한계 노출

정치개혁을 약속하고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을 선보였지만 실제 한 전 위원장이 가장 에너지를 쏟았던 분야는 야권을 향한 공격에 있었다.

그는 "운동권 특권세력, 부패세력, 종북세력 합체로 자기 살기 위해서 나라 망치는 이재명 민주당 폭주를 저지하겠다", "범죄자들의 연대와 종북세력의 주류 진출을 막아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등 네거티브를 통한 표심 얻기에 큰 공을 들였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급부상한 뒤에는 "범죄연대세력을 심판하겠다", "이조세력 심판하겠다"등 발언을 이어가며 이조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4일 사전투표 첫날에도 "국민의힘에게 주시는 한 표가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창이 된다"며 야권 반대 심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의 호소는 냉혹한 총선 결과로 돌아왔다. 정치권 안팎에선 국민의힘이 집권여당이란 점을 충분히 활동하지 못한 채 '범죄자를 막자'는 네거티브 '올인' 전략이 국민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 지원 유세 과정에서 "제가 해결할 겁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당내 스피커를 독점하며 '셀카 유세'를 이어간 점도 '총선 승리보다 대권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을 샀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식과 합리,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공정 경쟁 등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엄밀히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얘기들이다. 검사 출신인 정치 초보 한동훈 전 위원장에겐 가치 지향점이나 정책 콘텐츠가 절대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 만큼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히 드러내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고 본다"며 "입문 단계에서 한계를 노출하며 큰 좌절을 맛본 한동훈 전 위원장의 정치인으로서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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