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사가 소수의 학생에게 보다 집중할 수 있는 '맞춤형 수업'이다. 학생 수가 적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깊은 유대감도 형성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자체에서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적은 탓에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과 활동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럴 경우 지역의 작은 학교를 고수하는 일이 진정 학생을 위하는 길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지역 주민, 교육 관계자 등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 어떤 선택이 도움이 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관계 형성 기회 제한
2025년부터 적용될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역량은 자기관리, 지식정보처리, 창의적 사고, 심미적 감성, 협력적 소통, 공동체 역량 등이다.
이 중 협력적 소통, 공동체 역량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교사, 선·후배 등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교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작은 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 이는 연령과 발달단계에 따라 가져야 할 역량을 충분히 기르지 못한 채 성장할 수도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농촌 지역에서 3년간 근무한 교사 A씨는 "1학년, 5학년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복식학급을 운영하는데 1학년 학생이 혼자라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워한다"며 "친구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회생활을 미리 배우기도 하는데 옆에서 볼 때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토론·발표 등을 통해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며 균형 잡힌 시각을 키우고 새로운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학교는 주로 소수의 학생이 전 학년을 함께 하기 때문에 관점 및 가치관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재림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전부 의사,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자신들이 자라면서 본 직업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라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스스로 성장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데 작은 학교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목·방과후 수업 개설 제한
작은 학교는 소규모 학급으로 인해 다양한 교육과정이나 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저하, 도농 간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농촌 지역의 작은 학교에는 주로 한 학급에 5명 내외가 있어 모둠 수업, 토의·토론, 체험활동 등을 진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정 인원이 있어야 모둠별로 돌아가며 발표도 하고 다른 인원으로 모둠을 구성해 볼 수 있는데, 전교생을 다 합쳐도 축구(한 팀당 11명), 배구(한 팀당 6명) 등 운동 경기도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도시의 일반 학교에 비해 작은 학교의 교육 인프라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큰 학교는 학생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실, 3D 프린터를 실습하는 메이커실, 에듀테크실, 인공지능(AI)실 등 4차 산업시대에 맞는 체험형 활동공간을 구축하고 있지만 작은 학교는 과학실, 컴퓨터실, 예능실 정도가 전부다.
10년 이상 경력의 교사 B씨는 "소수의 학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라 수업 시간을 채우기 위해 교과 진도를 빠르게 나가거나 수업 복습을 주로 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분교에서 군위초로 전학 간 오모(38) 씨는 "체육관에서 조를 짜 운동을 하고 과학실에서 모둠별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작은 학교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던 수업 형태"라고 말했다.
작은 학교는 다양한 방과후 수업 진행에도 무리가 따른다. 보통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 조사를 받아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방과후 수업들을 개설한다. 반면 작은 학교는 외부 강사 수급이 원활한 수업 위주로만 개설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군위의 한 작은 학교 교무 실무원 C씨는 "학교 위치가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방과후 수업 강사들을 구하기 힘들다"며 "학생들이 희망하는 프로그램들을 최대한 개설해 주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개설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작은 학교 교사들도 어려움 겪어
작은 학교 교사들은 복식학급 운영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복식학급을 운영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육과정이 다른 두 개 학년의 수업을 한 수업에서 동시에 운영해야 한다. 저학년, 고학년으로 나뉘어 분리되면 사정이 좀 더 나은데 저학년과 고학년이 뒤섞이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수업 진행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준비 과정도 배가 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초등학교와 달리 교사들의 담당 전공이 있는데 작은 학교는 한 과목 교사가 전 학년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의 교사가 인근 2~3개 학교를 순회하며 겸임 수업을 하는 순회교사도 많고, 교사 수급이 어려울 땐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수업을 담당하는 상치교사가 생기기도 한다.
한 교사가 여러 학년의 수업을 가르치거나 여러 과목을 담당하게 되면 교사도 힘들지만 학생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준비 소홀 또는 전문성 부족으로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식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문성 있고 경쟁력 있는 교사들에게 배우는 학생들에 비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 차이 등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교육 격차의 확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교과 외 과중한 학교 행정 업무도 교사들에게 부담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작은 학교 교사들은 큰 학교든 작은 학교든 규모에만 차이가 있을 뿐 해야하는 일은 동일하다고 입을 모은다.
군위 지역 초교 교사 D씨는"졸업생이 1천 명이어도, 1명이어도 똑같이 졸업식을 해야 한다. 작은 학교에도 공문이 똑같이 오기 때문에 교사 50명이 처리하는 걸 5명이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며 "교사 한 사람당 교과 외에도 행정적인 업무가 많아 부담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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