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저출생이 불러온 작은 학교] <중> 사회성 발달 저해·교과목 선택 제한…"학생을 위한 결정 내려야"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형성할 기회 충분하지 않아
정상적인 교육과정·교과 프로그램 운영에도 어려움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의흥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등교를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의흥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등교를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의흥초등학교에서 재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작은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교사가 소수의 학생에게 보다 집중할 수 있는 '맞춤형 수업'이다. 학생 수가 적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깊은 유대감도 형성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자체에서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학생 수가 적은 탓에 학생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과 활동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럴 경우 지역의 작은 학교를 고수하는 일이 진정 학생을 위하는 길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지역 주민, 교육 관계자 등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 어떤 선택이 도움이 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관계 형성 기회 제한

2025년부터 적용될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역량은 자기관리, 지식정보처리, 창의적 사고, 심미적 감성, 협력적 소통, 공동체 역량 등이다.

이 중 협력적 소통, 공동체 역량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교사, 선·후배 등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교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작은 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 이는 연령과 발달단계에 따라 가져야 할 역량을 충분히 기르지 못한 채 성장할 수도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농촌 지역에서 3년간 근무한 교사 A씨는 "1학년, 5학년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복식학급을 운영하는데 1학년 학생이 혼자라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워한다"며 "친구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회생활을 미리 배우기도 하는데 옆에서 볼 때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토론·발표 등을 통해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며 균형 잡힌 시각을 키우고 새로운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학교는 주로 소수의 학생이 전 학년을 함께 하기 때문에 관점 및 가치관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재림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전부 의사,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자신들이 자라면서 본 직업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라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스스로 성장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데 작은 학교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의흥초등학교에서 재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교과목·방과후 수업 개설 제한

작은 학교는 소규모 학급으로 인해 다양한 교육과정이나 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저하, 도농 간 교육 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농촌 지역의 작은 학교에는 주로 한 학급에 5명 내외가 있어 모둠 수업, 토의·토론, 체험활동 등을 진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정 인원이 있어야 모둠별로 돌아가며 발표도 하고 다른 인원으로 모둠을 구성해 볼 수 있는데, 전교생을 다 합쳐도 축구(한 팀당 11명), 배구(한 팀당 6명) 등 운동 경기도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도시의 일반 학교에 비해 작은 학교의 교육 인프라는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큰 학교는 학생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실, 3D 프린터를 실습하는 메이커실, 에듀테크실, 인공지능(AI)실 등 4차 산업시대에 맞는 체험형 활동공간을 구축하고 있지만 작은 학교는 과학실, 컴퓨터실, 예능실 정도가 전부다.

10년 이상 경력의 교사 B씨는 "소수의 학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라 수업 시간을 채우기 위해 교과 진도를 빠르게 나가거나 수업 복습을 주로 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분교에서 군위초로 전학 간 오모(38) 씨는 "체육관에서 조를 짜 운동을 하고 과학실에서 모둠별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작은 학교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던 수업 형태"라고 말했다.

작은 학교는 다양한 방과후 수업 진행에도 무리가 따른다. 보통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 조사를 받아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방과후 수업들을 개설한다. 반면 작은 학교는 외부 강사 수급이 원활한 수업 위주로만 개설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군위의 한 작은 학교 교무 실무원 C씨는 "학교 위치가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방과후 수업 강사들을 구하기 힘들다"며 "학생들이 희망하는 프로그램들을 최대한 개설해 주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개설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작은 학교 교사들도 어려움 겪어

작은 학교 교사들은 복식학급 운영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복식학급을 운영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육과정이 다른 두 개 학년의 수업을 한 수업에서 동시에 운영해야 한다. 저학년, 고학년으로 나뉘어 분리되면 사정이 좀 더 나은데 저학년과 고학년이 뒤섞이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수업 진행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준비 과정도 배가 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초등학교와 달리 교사들의 담당 전공이 있는데 작은 학교는 한 과목 교사가 전 학년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의 교사가 인근 2~3개 학교를 순회하며 겸임 수업을 하는 순회교사도 많고, 교사 수급이 어려울 땐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수업을 담당하는 상치교사가 생기기도 한다.

한 교사가 여러 학년의 수업을 가르치거나 여러 과목을 담당하게 되면 교사도 힘들지만 학생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준비 소홀 또는 전문성 부족으로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식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문성 있고 경쟁력 있는 교사들에게 배우는 학생들에 비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 차이 등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교육 격차의 확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교과 외 과중한 학교 행정 업무도 교사들에게 부담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작은 학교 교사들은 큰 학교든 작은 학교든 규모에만 차이가 있을 뿐 해야하는 일은 동일하다고 입을 모은다.

군위 지역 초교 교사 D씨는"졸업생이 1천 명이어도, 1명이어도 똑같이 졸업식을 해야 한다. 작은 학교에도 공문이 똑같이 오기 때문에 교사 50명이 처리하는 걸 5명이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며 "교사 한 사람당 교과 외에도 행정적인 업무가 많아 부담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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