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개관한 대구 간송미술관의 전시 유물 중에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聽鶯)'이 있다.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는 제목처럼 말과 꾀꼬리가 그림에 들어가 있다. 다만 말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특유의 근육이 돋보이기는커녕 평안한 풍경을 채우는 조연에 그친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유럽 귀족 일부는 애완견을 초상화에 함께 남겼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니 애민 정신은 말할 것도 없다는 표시로 풀이한다. 말을 대동한 이들도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작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트'의 나폴레옹이다. 심한 포샵이 지적되지만 여기서 말은 엄연한 '신스틸러'다. 주인의 강인한 풍모 연출에 일조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 사랑도 대단하다. 2022년 공개된 속칭 '승마 질주 영상'에서 그가 탄 백마는 백두혈통의 상징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대형 홍수로 인민들이 고초를 겪던 지난달 25일 러시아에서 오를로프 트로터 품종 말 24마리를 받았을까. 자력 수해 복구를 고집하며 국제사회 지원을 극구 거절했지만 백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1753년 작 '걸리버 여행기'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된 나라는 '후이늠의 나라'다. 완전한 창조물인 후이늠은 말의 형상을 한 지배층이다. 이들의 언어에는 거짓말이나 허위(虛僞)라는 표현이 없다. 악한 것에 대한 관념이나 생각이 없다. 누가 선(善)인지 악다구니 쓰며 다투는 일도 자연히 없다.
이들이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며 부리는 동물 중에 '야후(Yahoo)'라는 존재가 있다. 꼬리가 없고, 엉덩이 등을 제외하면 털로 수북한데 영락없는 인간의 몰골이다. 떼로 몰려와 걸리버를 공격할 때는 배설물을 뿜어 악취를 풍긴다. 3년 정도 후이늠의 나라에 머물며 그들의 이성과 겸손에 반한 걸리버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꺼린다. 야후 같은 우매(愚昧)한 무리들이 이끄는 정치가 떠오른 탓이다.
반복해서 황당한 주장을 내뱉는 일군의 무리들이 겹친다. 6·25전쟁 때 우리 군이 38선을 넘은 날이 기원인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게 조선총독부를 기리는 친일 행각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에 기함(氣陷)한다. 숭일(崇日) 낙인을 찍으며 막말을 배설하는 이도 한둘이 아니다. 최신판 '걸리버 여행기'에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등장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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