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미 무역수지 흑자 확대…트럼프 리스크 변수에 촉각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프레스콧 밸리에서 유세하고 있다. 애리조나는 미국 대선 경합주로 꼽힌다.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프레스콧 밸리에서 유세하고 있다. 애리조나는 미국 대선 경합주로 꼽힌다. 연합뉴스

내달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관세를 무기 삼아 세계 무역 판도를 바꾸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여부에 시선이 쏠린다.

트럼프 진영은 무역 적자 해소를 대외 경제 정책의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역대 최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트럼프 2기' 시대가 열릴 경우 한국이 주요 무역 압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 마련된

◆ 공급망 재편 속 한국 대미 수출 급증

20일 한국무역협회 무역 통계 시스템인 K-stat에 따르면 올해 1∼9월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는 368억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국가별로는 한국은 미국과 무역에서 399억달러로 가장 큰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이 기간 한국의 전체 흑자보다 많다. 이어 홍콩(253억달러), 베트남(219억달러), 인도(94억달러), 폴란드(60억달러) 등이 한국의 주요 무역 흑자 대상국이다.

2020년까지 미국은 홍콩, 베트남, 중국에 이어 한국의 네 번째 무역수지 흑자국에 머물렀다. 이후 2021년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중 전략 경쟁 심화 ▷급속한 세계 공급망 재편 ▷미국 내 첨단산업 투자 급증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 등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이 빠르게 늘었다.

2020년 166억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21년 227억달러, 2022년 280억달러에 이어 지난해 역대 최대인 444억달러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작년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확대는 수입은 정체된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 수출이 빠르게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9월 한국의 대미 수출은 951억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14.0% 증가했다. 증가율은 이 기간 한국의 전체 수출 증가율 9.6%를 크게 웃돈다.

품목을 보면 양대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19.6%↑), 반도체(147.5%↑) 외에도 컴퓨터(SSD 포함·170.1%↑), 기타기계류(117.7%↑), 합성수지(32.3%↑), 비누·치약·화장품(61.9%↑) 등 첨단 제품부터 소비재까지 다양하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주요 무역 적자국으로 분류된다.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21년까지 미국의 14위 무역수지 적자국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순위가 올라 올해 1∼8월 기준으로는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대만, 일본에 이어 8위까지 올라왔다.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 마련된 '스핀 룸'에서 취재진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간 TV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트럼프 리스크 변수 보편 관세 적용할수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중국산에는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도 10∼20%의 보편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지난 15일 시카고 연설에서는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자국의 무역 적자 해소를 핵심 정책 목표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동맹 여부를 가지지 않고 무역 적자가 큰 국가를 표적 삼아 압박 강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존재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이를 우회해 한국에도 보편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FTA는 법률에 준하는 외국과의 조약이라서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만 수정하긴 어렵다"면서도 "트럼프 집권 1기에 수십 년 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철강 수입 제한을 한 것처럼 다른 방안을 동원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내다봤다.

또 트럼프 재집권 시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자동차 부문에서 우선 미국의 압박이 시작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나아가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정부가 한미 FTA 개정이나 재협상 요구를 하고 나설 가능성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미 FTA는 미국이 주요 산업국과 드물게 체결한 양자 FTA로, 현재 한국의 대미 수출 적용 관세율은 0.03% 수준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실제로 집권 1기 시절 미국의 무역 적자를 키운다는 이유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나선 사례가 있다. NAFTA는 결국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으로 대체됐다.

나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전에서 USMCA가 중국의 미국 우회 침투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면서 취임과 동시에 재협상 조항을 발동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연간 100억달러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하는 등 재집권 시 안보·통상 등 다방면에 걸친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익을 극대화할 협상력 제고를 위한 대응 필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는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사업가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인물로 협상의 여지도 충분하다.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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