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린
저 강물과 같아서
서로의 수심(水深)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유속이 생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고 당기고
마침내
깊이에 다다른다
〈시작노트>
강이 두려운 것은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의 윤슬은 그러한 두려움을 일거에 무화시킵니다. 그(그녀)를 외면하는 것 또한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에 윤슬과 같은 미소가 어릴 때, 그 미소 아래 진실이 관류하고 있음을 알 때 비로소 두 팔을 벌릴 수 있습니다. 합수된 흐름의 깊이를 계량화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은 더하고 빼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있음으로 완성되는 사랑. 세상이 그런 공식으로 영위되기를 희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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