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린
저 강물과 같아서
서로의 수심(水深)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유속이 생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고 당기고
마침내
깊이에 다다른다

〈시작노트>
강이 두려운 것은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의 윤슬은 그러한 두려움을 일거에 무화시킵니다. 그(그녀)를 외면하는 것 또한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에 윤슬과 같은 미소가 어릴 때, 그 미소 아래 진실이 관류하고 있음을 알 때 비로소 두 팔을 벌릴 수 있습니다. 합수된 흐름의 깊이를 계량화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은 더하고 빼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있음으로 완성되는 사랑. 세상이 그런 공식으로 영위되기를 희구합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