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제방을 세우고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기록한 비석이 국보가 됐다.
국가유산청은 경북 영천시에 있는 보물 '영천 청제비'를 국보로 승격한다고 20일 밝혔다.
1969년 보물 지정 이후 약 56년 만에 나라를 대표하는 국보가 된 것이다.
영천 청제비는 '청못'이라고 불리는 저수지 옆에 세워진 비석이다.
청못은 신라 때 조성된 이후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데, 비석은 받침돌이나 덮개돌 없이 자연 그대로의 돌에 글자를 새긴 형태다.
영천 청제비는 청제축조·수리비와 청제중립비 등 2기로 구성돼 있다.
청제축조비와 청제수리비는 하나의 돌 앞·뒷면에 각각 글이 새겨져 있다.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우며, 글자 대부분은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
앞면의 청제축조비에는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23년에 해당하는 536년 2월 8일 '○탁곡' 지역에 큰 제방을 준공한 사실과 공사 규모, 동원 인원 등이 기록돼 있다.
뒷면의 청제수리비에는 원성왕(재위 785∼798) 14년인 798년 4월 13일 제방 수리 공사를 마쳤으며 그간의 경과, 공사 책임자, 공사 기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신라사에서 홍수, 가뭄이 가장 빈번했던 6세기와 8세기 후반∼9세기에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국가에서 추진한 토목 공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했다.
함께 놓여 있는 청제중립비는 1688년 땅에 묻혀 있었던 청제축조·수리비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이 새겨져 있으며, 신라의 예스러운 서풍을 따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축조 및 수리 과정, 왕실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이 기록돼 있어 신라의 정치·사회·경제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시대 궁중에서 열린 행사를 기록한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을 포함한 6건의 문화유산은 보물로 각각 지정했다.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은 왕실 행사를 기록한 그림이다.
1747년 숙종(재위 1674∼1720)의 계비인 인원왕후의 회갑을 맞아 존호를 올린 것을 축원하고 기념하고자 경복궁 옛터에서 시행된 정시(庭試)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정시는 국가에 경축할 일이 있을 때 비정기적으로 시행된 과거 시험을 뜻한다.
영조가 직접 지은 어제시(御製詩)에 50명의 신하가 화답한 연구시(聯句詩·여러 명이 운자를 공유하며 함께 짓는 시)가 남아 있어 주목할 만하다.
국가유산청은 "'영조실록', '승정원일기'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작품"이라며 "궁중 행사를 표현한 병풍 중 이른 시기의 유물로 제작 시기가 명확해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왕실 행사를 기록한 그림을 넘어 영조의 정치 철학과 국가 운영 방식을 시각적으로 담아낸 중요한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유산청은 '자치통감 권81∼85',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목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목판', '치문경훈 목판'도 보물 목록에 올렸다.
자치통감은 기원전 403년 주나라 위열왕 때부터 송나라 건국 직전까지 약 1362년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이 판본은 1434년 편찬에 착수해 1436년에 펴낸 책 중 일부다.
청도 운문사가 소장한 조선시대 목판은 완질로 남아 있는 데다 이 목판으로 인출한 책도 함께 전해져 원천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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