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의 비밀을 풀고 이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023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처리를 마친 안동 하회탈과 병산탈이 안동시립박물관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최근 연구진들은 탈 복원에 관한 뒷이야기를 전했다.
1964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2년여 동안 진행된 과학적 조사와 보존처리 된 탈들은 57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단순한 외출은 아니었다. 국보 탈들은 첨단 기술을 통해 자신들이 간직해 온 시간의 흔적을 연구진들에게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탈들의 과학적 조사는 X선 CT 촬영부터 시작됐다. 연구진이 가장 먼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였다.
그 결과 탈 제작 당시 사용된 나무의 나이테 방향이 밝혀졌고, 조각할 때 나무를 어떤 방식으로 잘랐는지도 확인됐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감춰져 있던 밑그림과 보수 흔적도 드러났다. 각시탈과 주지탈에서는 나무를 연결하고자 사용한 작은 못이 확인됐고, 목재 내부에는 보이지 않던 충해 흔적도 발견됐다.
특히 '병산탈(을)'은 파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뒷면에 과거 보강재가 덧대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 보강재는 코르크 재질로 돼 있어 탈과 어울리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제거하고 X선 CT 데이터와 3D 스캔을 결합해 디지털 모델링을 진행한 후 3D 프린터를 이용해 새로운 보강재를 제작했다.
연구진은 "이렇게까지 정밀한 분석을 거쳐 보존처리된 하회탈과 병산탈은 처음"이라며 "그야말로 21세기 과학이 800년 전 전통을 살려낸 셈"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채색 재료 분석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양반탈의 붉은 색은 연단(鉛丹)과 연백(鉛白), 각시탈의 흰색은 연백, 볼과 이마의 붉은 색은 진사(辰砂)로 칠해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는 전통 안료를 사용해 탈을 제작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또한 표면 유기물 분석에서는 탈 표면에서 열화 된 식물성 기름 성분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 기름이 오랜 세월 동안 탈을 관리하며 덧발라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백정탈 이마에서는 밀랍 계열 성분도 확인됐다.
"이건 조선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탈을 오래 보존하려고 했던 흔적일 수 있어요. 하회마을 사람들이 매년 별신굿을 열면서 탈을 닦고 관리했을 수도 있죠."
이러한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하회탈과 병산탈이 단순히 공연용 소품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손길을 오랜 세월 받아온 신성한 존재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연구진은 탈들의 3차원 스캔 데이터를 X선 CT 촬영 자료와 결합하여 디지털 기록화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탈의 외형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데이터가 구축됐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탈이 손상되거나 변형될 때 원형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구진은 "국보 탈들은 이제 가상공간에서도 존재하게 됐다"고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현재 하회탈과 병산탈은 안동시립박물관으로 돌아가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밝혀진 탈들의 비밀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이들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다. 나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온, 살아 있는 역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하회탈과 병산탈이 유리 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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