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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박상구] 남겨진 이재민의 박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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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구 사회부 기자
박상구 사회부 기자

"불만 꺼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벌써 가면 어떡해요."

경북 북동부 산불 피해 현장 출장 마지막 날, 경북 청송에 차려진 한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이 출장을 마치고 돌아가게 됐다는 기자의 인사를 받고 한 얘기다. 산불이 꺼진 것과는 별개로 이재민들은 여전히 삶의 터전을 잃고 기약 없는 대피소 생활을 이어 가게 됐는데 전국적인 관심이 끊겨 간다는 불안감이 전달됐다.

이 이재민은 집을 잃고 텐트에서 밤을 보낸 지난달 26일 처음 만나 출장 기간 내내 며칠을 기자와 마주쳤다. 이웃들과 산불이 확산했던 당시 상황을 분주하게 얘기하고, 이틀 후 대피소에서 나와 밝은 표정으로 손바닥을 펴고 내리는 봄비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밝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출장 마지막 날 본 이재민은 울상이었다. 실제로 대피소가 차려진 뒤 6일 동안 현장을 찾으면서, 개선되는 상황과 반대로 이곳 분위기가 갈수록 어두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비교적 밝던 이재민이 산불이 잡힌 다음 날부터 연일 한숨만 내쉬는 모습은 당시 참 낯설게 느껴졌다.

산불 진화 이후 피해가 경미해 대피소에서 나가는 이웃들을 "축하한다, 좋겠다"며 배웅하고 텐트로 돌아오는 이재민들 표정을 보고 나서야 갈수록 어두워지는 대피소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재난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입 밖에 꺼내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한숨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진하게 섞여 있었다. 불이 꺼지면서 소방관도, 취재 기자도, 일부 이웃마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모든 것을 잃고 대피소에 남아야 한다는 현실이 두드러진 탓이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북동부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집은 7천30곳에 달한다. 논밭은 약 3천800㏊가 타 버렸고 소실된 농기계도 1만800여 대로 적잖다.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에 입력된 피해 신고액은 최근까지 모두 1조4천300억원에 달한다. 이마저도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아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피해 농민 지원에 나섰지만 이들의 박탈감을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산불 피해가 컸던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은 특별재난지역이 됐지만 지방세 감면과 생계 지원 정도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경북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47.8%로 절반이 채 안 된다. 마늘의 경우 재해보험 가입률이 21.1%에 불과하고 사과도 나무 피해 보상이 포함된 특약에는 76.1%만 가입한 상태다. 송이와 같은 임산물은 아예 농작물재해보험 대상에서 빠져 있어 한동안 소득 공백이 불가피하다.

한 피해 이재민은 최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불이 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같이 꺼져 버렸다고 했다. 그는 대피소 생활은 여전하다며 "사람들이 산불에 비해 피해 복구에는 별 생각이 없나 보네요"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이후 대통령 탄핵 선고와 임차 헬기 추락 등 다른 사건 사고 탓인지 경북 산불이 꽤 오래전 일처럼 느껴져 이재민 얘기를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재난 단계를 넘어 피해 복구의 시간이 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이들이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무너진 집과 논밭뿐 아니라 생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구체적 지원이 절실하다. 특히 사과와 송이 등 경북 특산물의 경우 정상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잠재적 피해까지 계산해야 한다. 이재민들이 박탈감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터도 복구될 수 있도록 정확한 피해 집계가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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