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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01>선비의 품격에 취향을 더한 초상화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윤동섬 초상', 비단에 채색, 97×57.4㎝, 리움미술관 소장

사대부관료 윤동섬(1710-1795)의 초상이다. 유학자의 차림인 심의와 복건을 단정하게 갖추었고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은 절제된 표정이다. 안정감 있게 형태를 묘사한 필력, 차분하고 은근한 색채 표현, 어떤 영원성의 분위기 등 격조 높은 작품이다. 작가는 미상이지만 당대 최고의 기량을 지닌 초상화가의 솜씨다. 벽과 바닥으로 배경을 구분하고 상반신 부분인 벽면에 옅은 색을 올린 점이 특이한데 자칫 책상 위의 물건으로 쏠릴 수 있는 시선을 인물의 얼굴로 향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무미한 표정과 달리 책상과 문구류까지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그 시대의 유행과 이분의 취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목리(木理)가 아름다운 짙은 색 책상은 가부좌한 무릎을 가릴 정도의 폭이어서 작지도 크지도 않다. 비슷한 시기의 인물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이 '청공도'에서 소개한 자신의 책상과 비교해 보면 길이가 삼 분의 일 정도다.

책상은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는 사개물림에 장식물이나 부속품 등 군더더기 하나 보이지 않아 심플하다. 비례가 쾌적해 요즘의 오브제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세련된 감각의 디자인이다. 필통과 붓, 벼루, 책, 향로 등은 한눈에 보아도 사치스럽다. 연시(燕市)라고 했던 청나라 수도 연경(지금의 북경)에서 들여온 수입품이다.

녹색으로 산수 문양을 넣은 사각 필통에는 색색의 붓이 꽂혀있고, 그 옆엔 조각이 있는 타원형 벼루, 청색 포갑인 길쭉한 글씨첩, 화형(花形) 향로가 있다. 향로가 특이하다. 꽃봉오리 모양인 몸체엔 꽃과 잎으로 무늬를 넣었고, 세 발은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어 받쳤으며, 양쪽 손잡이는 나뭇가지 형태다.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는 귀한 물건들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화상찬(畵像讚)'이 그림 위에 대부분 있다. 이 화상(畵像)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는 글이다. 윤동섬은 스스로 지어서 써넣으며 자신을 이런 사람이라고 했다.

재주 없고 덕망 없으니 어찌 공경(公卿)이리오?

사려 없고 생각 없으니 그 목숨만 이어감인가?

사물과 다투지 않으니 기질이 강하지 않음인가?

가슴에 숙물(宿物)이 없으니 성정이 기욕(嗜慾)을 잊음인가?

성인을 배워도 얻음이 없으니 힘이 부족함인가?

세상에 무익하니 구학(丘壑)이 마땅함인가?

無才無德 何公卿邪 無慮無思 其延生邪 與物無競 氣未剛邪 胸無宿物 性嗜忘邪 學聖無得 力不足邪 於世無益 宜丘壑邪

모두 의문문이다. 겸양과 자부가 묘하게 섞여 있는 글이어서 선비의 모습과 호사가의 모습이 함께 드러난 이 그림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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