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반을 걸어 학교에 가야 했지만, 재명이는 항상 밝은 아이였어요."
이재명 대통령의 초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삼계국민학교 동기 이정희 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대통령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1976년 졸업 당시 삼계국민학교(현 월곡초 삼계분교)는 한 학년에 100명이 넘는 대형 시골학교였다.
이 씨는 "1~2학년은 반이 2개였는데 한 반에 70명씩 들어갔다.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었다"며 "아이들 대부분은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10명 중 1명도 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통학 거리도 쉽지 않았다. 대통령을 포함해 졸업생 57명 중 30명 이상이 4~7㎞ 이상을 걸어서 등교했다.
그는 "초등학생 걸음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며 "9시 수업을 맞추려면 7시 반 전에 나서야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삼계 일대는 극심한 산악지형으로, 논은 거의 없고 대부분 다락밭이었다.
그는 "대통령 댁은 논이 아예 없었고, 남의 땅을 빌려 밭농사를 지었다"며 "화전을 일군 곳이나 겨우 있었고, 주 수입원은 고추와 담배, 그리고 일부 감자와 콩, 깨 등이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어머니는 땅이 없어도 농사를 지었고, 부친은 마을 이장으로 활동했다.
이 씨는 "늘 먹는 것조차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대통령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말썽꾸러기보다는 개구쟁이, 그리고 늘 웃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삼계 지역은 유교적 전통이 강했고, 국민학교 졸업 후 바로 객지로 나가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 학생이 가난한 형편 탓에 중학교는 꿈도 못 꾸고, 명절에 누나 형이 있는 곳으로 내보내 졌다는 것이다.
이 씨는 대통령이 과일이나 간식조차 쉽게 접하지 못했던 유년기를 언급하며 "그 시절 고구마, 땅콩, 머루, 다래, 돌복숭아 같은 야생 과일을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며 "당시 군부대 철조망 근처에서는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로 떨어진 과일을 주워 나눠 먹었다"고 했다.
따먹는 것은 '말썽꾸러기' 취급을 받았지만, 주워 먹는 것은 '지혜로운 생존'이었다.
이 씨와 대통령 등 동창생들은 같은 추억을 가진 탓에 "어릴 때 과일 하나 제대로 못 먹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그래서 나중에 친구들끼리 모여 과일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가난하고 험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웃음을 잃지 않던 소년. 이정희 씨의 기억 속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의 정치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혹독한 시절을 통과한 '밝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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