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찾은 대구 서구 평리동 한 5층 건물. 건물 간판들은 모두 비슷한 디자인으로,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 간판 아래에는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간판을 단 업체 4곳 중 2곳은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모두 서구청 간판개선사업으로 최근 교체된 간판이었다.
대구 서구가 10년이 넘도록 추진해온 지역 '간판개선사업'이 업체 폐업·이전 계획 파악도 없이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탓에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서구청에 따르면 서구는 지난해 8월부터 이달까지 구비 18억원을 들여 간판개선사업을 진행 중이다. 노후하거나 규정에 어긋나는 간판을 업체 동의를 받아 교체해주는 방식이다.
지난 2012년부터 권역을 나눠 총 4차례에 걸쳐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번에는 평리네거리와 두류네거리 사이 구간 351개 업체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지난달까지 서구청은 교체에 동의한 업체 215곳(동의율 61.25%) 중 140곳의 간판을 새로 달며 15억 원을 지출했다.
서구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간판 교체를 독려하고 있지만 최근 지원 사업으로 간판을 교체한 업체들의 폐업·이전 현황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업체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도 폐업·이전 계획을 확인하지 않았고, '최소 유지 기간' 등도 설정하지 않았다. 간판 교체 비용을 전액 부담하면서도 단기간 내 폐업·이전한 업체로부터 비용을 돌려받을 장치조차 없는 셈이다.
더욱이 사업 참여도도 저조한데, 지역 상인들은 동의율이 애초에 높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동의 조건으로 획일적이고 밋밋한 간판 디자인을 강요받는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해당 사업 참여를 거부했다는 한 업주는 "구청 사업으로 간판 단 곳들을 보면 전보다 크기도 작아지고, 색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저런 간판들로 도시 미관을 개선한다는 구상에도 동의할 수 없다. 세금을 쓰고도 구청이나 업체 누구 하나 만족할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높지 않은 현행 사업 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종민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업 대상 업체 수를 다소 줄이더라도 소상공인들이 원하는 간판 디자인을 채택하고, '입소문' 등을 활용한 공모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업체들이 소극적인데 지자체가 밀어붙인다 해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 상인회 등과 사업 방향을 재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 서구는 한때 반환 조항 도입을 검토했지만, 동의율 저하를 우려해 포기했다는 입장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상위 법에 '반환 규정'이 없어 관련 조항 도입이 어려웠다"며 "간판 교체 업체들의 폐업·이전 여부는 전반적으로 확인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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