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수 리셋] 6·3 대선 '反이재명 빅텐트'만 외치다 끝난 국힘

(5)보수 정책 어젠다 실종…"싱크탱크 유명무실"
李 승리 이면엔 정책그룹…국힘, 공약 경쟁서 밀려
여의도연구원 당 비전 제시 못해…연구보다 홍보 치중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 주재 원외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 주재 원외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한 원인 중 하나로는 정책 어젠다의 부재가 꼽힌다. 두 달간 대선판은 정책 대신 네거티브에 얼룩졌고 당 싱크탱크도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747 공약'으로 표심을 사로잡았다. 18대 대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라는 획기적인 구호를 제시했다. 모두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전성기 시절 내놓은 구상이었다. 하지만 현재 여의도연구원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李 승리 이면엔 정책그룹…국힘, 공약 경쟁서 밀려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승리를 이끈 주역 중 하나로 정책그룹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 수장이었던 이한주 전 민주연구원장부터 이 대통령과 40년 가까이 정치 여정을 함께했다. 이 전 원장은 21대 대선에선 민주당 대선 공약을 총괄 기획·설계하는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정책본부장을 맡았고, 장기간 손발을 맞춰온 만큼 이번 정부에서도 국정기획위원장으로 인선됐다.

외곽 싱크탱크 구성원 역시 이 대통령과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인사들이었다. 기본소득 구상을 설계한 강남훈 한신대 명예교수나 경제성장수석으로 임명된 하준경 한양대 교수도 이 대통령의 경기지사 시절부터 머리를 맞댄 '경제 책사'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선 국면에서 '반(反) 이재명 빅텐트' 구호에 골몰했다. 김문수 대선 후보가 당의 후보로 확정된 뒤부터는 뒤처진 공약 개발에 뒤따라갔어야 했으나 정책위원회나 여의도연구원, 후보 캠프 등은 이렇다 할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다.

심지어 민주당에 굵직한 공약을 빼앗기기도 했다. '개헌'은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를 할 예정이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전면에 내세운 공약이었다. 하지만 김 후보 측이 주저하는 동안 이재명 대통령 측이 대선 공약으로 먼저 꺼내 들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에서도 정책 준비를 했지만 각종 내홍을 거쳐 대선 후보가 뒤늦게 확정됐고 1강 후보를 견제하느라 정책에 힘을 쏟지 못한 감이 있다"며 "후보가 뒤늦게 확정된 데다 정책 어젠다마저 후보 캠프 중심으로 꾸려지다 보니 미흡한 점이 드러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여의도연구원 당 비전 제시 못해…연구보다 홍보 치중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수년째 나오고 있다. 정책 연구보다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2024년 정책연구소 활동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여의도연구원의 연구·개발실적은 총 59건이었다. 반면 지난해 정책 홍보는 811회 이뤄졌다. 자체 홈페이지에서 정책홍보 및 일반인 정책 제안을 수렴한 것이 대다수(765회)였고, 이외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이메일을 통한 홍보물이었다.

이와 달리 민주연구원은 홍보보다 정책에 중점을 둔 연구 활동이 진행됐다. 지난 2023년 8월부터 작년 말까지 연구·개발실적은 84건, 2023년부터 연구가 진행된 5건을 제외하면 작년 한 해 이뤄진 연구는 총 79건이었다. 정책 홍보는 총 64회 이뤄졌다.

연구 내용 면에서도 민주연구원의 활동이 보다 다양한 방면에서 이뤄졌다. 민주연구원은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 및 AI규제를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대안' 등 큰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했을 때마다 그에 대응해 연구를 진행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엔 '윤석열 비상계엄의 경제적 충격'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고 '에너지고속도로' 등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반영된 정책 연구도 있었다. 반면 여의도연구원은 4·10 총선 이후 복지, 외교안보·대북통일과 관련한 연구물을 주로 내놨다.

◆'여의도연구원 부활 프로그램' 만들어야

1995년 한국 정당 최초 정책 연구소로 문을 연 여의도연구원(전신 여의도연구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당의 분열 등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작년 총선 참패 이후 한동훈 전 당대표 등이 여의도연구원의 정치 개발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무엇보다 당의 비전이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미시적인 과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정책 연구 용역이 들어오면 이에 대한 과제를 해결하는 역할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당의 싱크탱크는 정무적·정책적으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 중 하나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여의도연구원 인력은 총 63명으로 이 가운데 박사급은 5명에 불과하다. 민주연구원의 총 직원 32명 중 박사급이 16명인 것과 비교해선 절대적으로 비중이 적다.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병)은 "18대 대선까지는 대선을 뒷받침하는 조직으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부턴 여의도 연구원이 완전히 황폐화돼 지금은 싱크탱크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윤희숙 원장이 개인기로 버텨오고 있지만 인력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박사급인 전문 인력을 보강하고 예산 투입도 늘려야 한다. 외부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아웃소싱을 잘해야 할 필요도 있다"며 "당 지도부가 정비되면 내년 지방선거와 이후 총선, 향후 대선을 내다보면서 '여의도연구원 부활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힘이 정책정당,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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