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울진 고교에서 재학생 '시험지 절도' 미수···학교는 숨기고, 교육청은 늦장 대응

"정답만 적힌 시험지 이상했다"… 제보 나선 동급생들, 학교 대응에 의문 제기

시험기간 중 학교에 무단 침입한 혐의(건조물 침입 등)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전직 기간제 교사 A(30대)씨가 14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험기간 중 학교에 무단 침입한 혐의(건조물 침입 등)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전직 기간제 교사 A(30대)씨가 14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울진의 모 공립고등학교에서 재학생이 시험지를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과 관련해 교육당국의 사후 처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는 해당 학생이 '과거에 시험지를 절도한 적이 없다'는 입장인 반면, 재학생들은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경찰과 교육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4월23일 오전 1시쯤 울진 모 고교에 복면을 쓴 괴한이 침입했다 학교 경비시스템에 의해 적발됐다. 당시 학교는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던 시기로, 학교 측은 24일 오후 1시쯤 경찰에 외부인 침입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은 사흘 뒤 신원을 특정해, 이 학교 재학생 A군을 붙잡았다.

A군은 경찰 조사에서 "시험지를 훔치려고 학교에 침입했다. 시험지를 훔치지는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A군에게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 조사 뒤 지난달 검찰에 송치했다.

학교는 당시 시험지를 파기하고, 문제를 재출제 해 중간고사를 치렀다. 사건 이후 A군은 '자퇴'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험지 파기, 문제 재출제 등으로 인해 '업무방해' 혐의 등은 적용되지 않았다. A군이 시험지 절도를 위한 침입 시도가 이번이 처음이라고 진술했다"면서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건 쉬쉬 급급 학교

학교 측은 중간고사가 '교내 학업 평가'라는 이유로 학업성적관리위원회만 개최한 뒤 해당 사건을 상급 기관인 경북도교육청에는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 사건 이후 A군에 대해선 자퇴 처리를 하면서, 내신 성적 평가 등에 있어 다른 학생에게도 일부 영향을 끼치게 됐다.

이 같은 이유로 해당학교 3학년 재학생들은 지난 1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시험지 절도 미수와 관련해 학생들이 느꼈던 정황과, 교사·학교의 대응 등을 소상히 전했다.

경북 울진지역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올해 초 시험지 유출 의혹에 관한 제보글의 모습. 인터넷 캡처
경북 울진지역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올해 초 시험지 유출 의혹에 관한 제보글의 모습. 인터넷 캡처

해당 글 작성자는 "소규모 시골학교라 대부분 초·중·고를 함께 지내왔고, 다들 알고 있던 아이(A군)다. 그런데 갑자기 기초학력평가도 못 넘기던 실력에서 모든 과목 만점을 받기 시작하니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풀이가 필요한 과목에서도 시험지에는 풀이가 하나도 없이 정답만 적혀 있었다. 평소 간단한 문제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도 성적은 계속 최상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께 수차례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조심하겠다'는 말 뿐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A군의 성적이 알려진 것과 달리 1학년 때 보통 수준이었으며, 2학년 때는 성적이 올랐다. 2학년 2학기 수행평가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각된 적이 있었다"면서 "지난 4월의 학교 무단 침입 사건이 겹치면서 A군 행위가 부각된 것 같다"고 했다.

◆경북교육청, 긴급 점검 실시

경북교육청은 지난 18일 학교를 긴급 방문해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현장 점검 이후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경찰 수사에서 건조물 침입 정도로 종결 시킨 점이 아쉽다"면서도 "A군의 성적이 오른 부분도 있지만, 과거에도 시험지 절도 등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 (A군이 학교에 침입한 이후) 기존 시험지를 파기하고, 재출제한 시험지로 시험을 쳤다"고 했다.

학교 측은 A군에 대한 별도 징계 없이 '자퇴'로 처리한 이유에 대해선 "학부모와 학생이 잘못을 인정하고 자퇴를 희망함에 따라 관련 징계 절차에 의거했다"고 설명했다.

학교 학부모는 매일신문과 통화에서 "이 일이 단순히 학생 1명의 잘못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의 무책임함이 본질"이라며 "학교 침입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는데도 '자퇴'라는 방식으로 종결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이번 기회로 진실을 밝히려 용기를 낸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시험기간 중 학교에 무단 침입한 혐의(건조물 침입 등)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학부모 B(40대)씨가 15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김영진기자.
시험기간 중 학교에 무단 침입한 혐의(건조물 침입 등)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학부모 B(40대)씨가 15일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김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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