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한미 관세 협상, '큰 틀'의 합의일 뿐 자화자찬할 일 아니다

우리 정부가 4천500억달러 규모의 투자·구매 패키지를 제시하며 미국이 8월 1일부터 부과하려던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부과 중인 25%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부 항목에 대한 구체적 협약까지 맺어진 단계는 아니다. 말 그대로 '큰 틀'의 합의를 이뤘을 뿐이다.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막아 내는 등 농산물 분야에서 선방(善防)했다는 평가에도 불구, 여전히 한미 간 이견(異見)이 드러나고 있다. 관세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이 꾸준히 제기해 온 비관세 장벽 철폐에 대한 논의도 매듭짓지 못했다.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액 대폭 인상,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서 한국의 역할 등 민감한 안보 현안 역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공식 합의문도 없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은 미국에 완전히 무역을 열기로 동의했다.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주장했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자동차와 쌀 같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역사적 개방"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설명 자료를 통해 "한미 통상 협의에서 쌀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협상단 수석대표인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쌀과 관련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물론 미국 주장이 유권자 표심을 노린 '정치적 수사(修辭)'일 수 있지만 지금껏 봐 온 미국 태도로 볼 때 방심해선 안 된다.

일단 과채류에 대한 검역 절차 등 비관세 장벽 철폐 압박은 더 거세질 터이다. 구 부총리는 "앞으로가 문제인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고,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위기를 잘 넘겼지만 언제 관세나 비관세 압박이 들어올지 안심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농산물 외에도 상당한 쟁점이 될 것으로 봤던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이나 구글 정밀 지도 반출 허용 여부 등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이나 이후 관세 합의를 둘러싼 구체적 이행 방안을 논의할 때 얼마든 이슈화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다. 시간을 벌었을 뿐, 성급한 자화자찬(自畫自讚)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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