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김태일] 전한길의 늪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국민의힘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전한길은 누구인가? 신출내기 당원 한 사람의 말이 어떻게 국민의힘을 휘청거리게 하는가? 국민의힘은 저토록 허술한 정당이었나? 궁금한 일이 한두 가지 아니다.

전한길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독특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던 한국사 강사였다. 그러던 그가 올 초부터 정치적 메시지를 쏘아 올리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역사 전쟁의 전사를 자임했다. 그리고 곧바로 전선을 전방위로 넓혔다.

그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선관위를 공격하기도 하고, 언론의 편향성을 비판하며 특정 언론에 싸움을 걸기도 했다. 급기야 입법 독재라는 표독스러운 말로 정치권을 타격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돌아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한국사 강사를 던지고 지난 6월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정당 활동을 공식화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 지지하면서 보수 진영 내에서도 강경 보수 성향을 표방하였다. 그는 모든 정치, 사회 이슈를 좌우 대립 구도로 강하게 몰아가면서 강성 보수층 결집을 유도했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은 순식간 강성 보수 정치인의 아이돌이 되었다.

전한길의 강경 보수 정치 선동은 날이 갈수록 격해졌다. 그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고, 극렬한 표현으로 헌법재판관을 위협했다. 자극적 정치 언술로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복 분위기를 부추겼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장에서 '배신자' 구호로 난장판을 만든 것도 그의 선동이었다.

그런데 그의 자극적 선동은 강성 보수층을 결집하는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나 법적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었고, 당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그의 선동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윤석열의 잘못을 정치적으로 절연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전한길의 돌출적 선동 때문에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꼴이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전한길의 늪'이라고 한다. 그가 주도하는 선동이 국민의힘 이미지와 전략을 위태롭게 하여 국민의힘을 곤경에 빠트리는 형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전한길의 선동으로 당의 이미지가 강경 보수로 굳어지고 있는 현실, 당에서 강경 보수층은 결집하는 반면에 중도와 온건층은 이탈하고 있는 상황, 윤석열과 절연하려는 지도부의 메시지가 무력화하는 국면이 만들어지는 것은 국민의힘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국민의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한길을 당에서 퇴출하자니 보수 강경 세력의 반발이 예상되고 그냥 두자니 중도층의 이탈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전한길이 만들어 놓은 이 진퇴양난의 상황을 '전한길의 늪'이라 부르는 것이다. '전한길의 늪'은 현재 국민의힘을 싸고 있는 극단주의와 내부 분열의 심각한 위기를 말한다. 이 위기는 당의 이미지와 지지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이 늪에서 벗어나려면 전한길을 배제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이 미온적이고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 대응하면 사태는 더 악화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은 국민의힘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전한길 한 개인의 돌출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힘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구조, 가치, 아주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문제의 한 '증상'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의힘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 때문에 생긴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혁신위원장,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내놓은 혁신안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세 혁신안이 공통으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윤석열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절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윤석열의 과오에 대한 공식 사과를 당헌 당규에 명시하자고까지 했다. 전한길 배제가 전술적 출발이라면 김용태, 안철수, 윤희숙이 제시하는 혁신 과제야말로 국민의힘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출발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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