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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10년째 대구 북성로 기술자와 공간 기록…문찬미 사진가

26일
26일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만난 문찬미 사진가가 자신의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구 북성로. 대구역네거리 대우빌딩에서 달성공원까지 1.5㎞정도 이어진 길이다. 100여 년 전 일제가 대구읍성 북쪽 성벽을 허물고 이 길을 냈다. 이후 백화점을 비롯한 각종 상점과 일본식 가옥이 들어서면서 대구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 잡았다.

광복 후에도 명성은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인이 빠진 곳엔 기계와 금속, 철물을 취급하는 상점이 들어섰다. 1950~60년대 미군부대에서 공구와 군수물자 등이 몰리면서 1980년대엔 길 양쪽으로 1천 곳이 넘는 점포가 들어설 정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구거리로 변신했다.

이곳에선 수많은 장인들이 다양한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 점포가 외곽으로 속속 빠져나가 상권이 위축됐다. 수년 전부터는 인근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옛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문찬미(38) 사진가는 이처럼 변화하는 북성로 공구골목의 모습을 10년째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학부 때는 교환학생으로 러시아를 다녀올 정도로 문학에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6년부터 북성로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엔 그 작업의 결과물로 '기술되지 않은 시간'이라는 첫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도 그의 북성로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26일 대구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만난 문찬미 사진가는 "사진가라는 표현은 아직 낯설다"며 "사진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북성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2016년 북성로에 있는 사단법인 시간과공간연구소란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연구소의 업무 영역은 다양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대구 근대골목 투어'를 기획하고 북성로 도시재생사업을 이끌었던 단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밖에도 연구소에선 대구의 골목, 한옥 등이 어떻게 분포돼 있고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등을 전수조사하면서 인류학 관점으로 연구 활동을 했다. 당시 저는 북성로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문찬미(오른쪽) 사진가가 옛 동료인 훌라(HOOLA) 멤버들과
문찬미(오른쪽) 사진가가 옛 동료인 훌라(HOOLA) 멤버들과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전시관 '장인의 방'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올해 초까지 훌라(HOOLA)라는 단체에 소속돼 있었다. 어떤 곳인가.

▶사회적인 업사이클을 추구하는 인문예술팀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과공간연구소에 팀장으로 근무했던 안진나 훌라 대표가 연구소 활동을 이어가며 만난 또래 청년들과 함께 시작했다. 처음엔 폐자원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업사이클 밴드로 출발했다. 훌라라는 이름도 구성원들이 즐기던 카드게임에서 따왔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공연을 하고 있다.

이후 활동을 이어가면서 업사이클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됐다. 도시의 흥망성쇠에도 사이클이 있다고 보자면 기존 도시가 쇠락하더라도 무작정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재해석해 오히려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 사회적 업사이클 개념으로 단체의 정체성이 확장됐고, 2017년 말쯤 시간과공간연구소로부터 독립했다.

지금은 북성로를 중심으로 한 지역 연구와 인문·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전국 여러 도시의 아카이빙 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중구청이 북성로 일원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만든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도 운영하고 있다.

-그간 해왔던 일이 사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사진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처음 북성로에 발을 들인 2016년만 해도 주변에 아파트가 없을 때였다. 적산가옥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고, 여기에다 한옥과 양옥, 옛 골목이 공존했다. 대구 도심 바로 인근에서 만난 이런 두터운 시간의 층위(層位)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다녔다.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이곳을 찍어서 자료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연구소 측에 제안을 했고, 이후 기존 업무와 함께 사진 기록 업무도 맡게 됐다. 훌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북성로 철공소' 등 각종 프로젝트 결과물로 발간한 여러 책자에 직접 찍은 사진이 실릴 수 있었다.

문찬미 사진가가 지난해 개인전
문찬미 사진가가 지난해 개인전 '기술되지 않은 시간'을 통해 선보인 작품 '선일포금'. 문찬미 사진가 제공

-이전에 사진과의 접점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대학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사진학과를 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결국엔 문학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그렇게 하진 못했다.

하지만 대학 때 경북대 인근 한 마을기업을 통해 사진 기획 일을 하기도 했고,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갤러리 카페에서 소소한 전시회를 갖는 등 사진과 관련한 경험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했다. 대학원 졸업 직후에도 잠시였지만 현업 사진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조수처럼 따라다니며 실무를 경험했다.

2015년 대구문화재단(지금의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신진기획자 양성과정에 교육생으로 참여한 것도 사진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해낼 수 있는지를 경험하면서 고민을 조금씩 풀어나갔던 것 같다.

-지난해엔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선별해 북성로 기술자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북성로란 공간을 지저분하거나 위험하기에 도시 한복판에 있어선 안 될 것처럼 보는 시선들이 제 머릿속에 누적돼왔다. 게다가 대중들은 북성로 기술자들에 대해 막연하게 거친 분일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수년간 만나본 많은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옆집 아저씨나 아버지, 삼촌 같은 다정한 분이었다.

기술자의 고유한 공간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사소하고 사적인 장면을 통해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오랜 시간 북성로를 이뤄나간 이들이 누구이고 어떤 곳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전하고 싶었다.

26일
26일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에서 만난 문찬미 사진가가 자신의 사진이 실린 책자를 펼쳐 보이며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도훈 기자

-훌라를 나와 독립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동안 훌라가 진행한 거의 모든 활동의 사진을 담당해왔다. 그랬기에 제가 좋아하는 사진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반면, 훌라 일을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하고자 하는 작업을 미뤄두거나 놓치게 될 때도 있었다. 그랬기에 사진가로서 더 사진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난해 개인전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앞서 선배들이 "개인전을 한 번 해보면 보이는 게 달라질 거다"란 얘기를 자주 했었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 부족한 게 뭔지 더 뼈저리게 깨달았고, 무엇을 더 좋아하고 무엇을 더 잘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졌다.

-지금은 연구단체 코뮤니타스의 상주 퇴강리 마을을 기록하는 작업에 객원 사진담당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음 달엔 경일대 대학원 사진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 건가.

▶명확하게 어떤 작업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스쳐 지나가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을 저만의 시선으로 재조명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북성로 기술자들에 대한 작업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제가 지켜본 그들은 다들 대단하고 굉장한 분이었으나, 3D업종으로 치부되며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보일 때가 많았다.

저는 지금껏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공부를 해왔던 사람이다. 결국 앞으로도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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