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1821~1896)은 소득이 적은 가정일수록 지출에서 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는 '엥겔의 법칙'을 발견했다. 가계비(家計費) 중 음식비 비율을 '엥겔지수'라고 하는데, 대체로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선진국일수록 지수가 낮다. 우리나라는 중간 소득층, 즉 소득 수준 40~60% 가정의 외식비를 포함한 엥겔지수가 2020년 기준 30% 정도였다. 그런데 엥겔지수는 흐름을 봐야 한다. 특정 시기에 소득계층과 국가 간 비교는 가능할 수 있지만 물가 변동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절댓값을 기준으로 고소득층, 저소득층을 나누지 않는다. 소득 수준과 엥겔지수가 반비례한다지만 물가가 급등하면서 반대 상황도 곧잘 벌어진다.
지난 2월 일본에선 엥겔지수가 43년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며 시끄러웠다. 2인 가구 기준 지난해 엥겔지수가 28.7%인데, 1981년 이후 최고다. 가계 실질 소비지출, 즉 물가상승분을 감안(勘案)한 지출 감소보다 식비 감소가 적어서 벌어진 일이다. 물가가 치솟다 보니 집집마다 지갑을 닫았는데, 식비는 덜 줄였다는 말이다. 벌이가 시원찮아도 먹거리는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식료품값이 오르다 보니 허리띠를 졸라매도 씀씀이는 더 커졌다는 의미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진다. 지난 7월 기준 일본 쌀값은 1년 만에 90.7% 폭등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8개월째 3% 이상 올랐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외식비 비중이 늘어난 데다 2022년부터 물가 급등에 따라 실질임금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엥겔지수도 올랐다. 심지어 정점을 찍은 엥겔지수가 다시 낮아진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엥겔지수가 전년보다 낮아졌다는데, 이유가 서글프다. 신선식품 가격이 워낙 뛴 탓에 대체 가공식품을 소비해서다. 생물 꽁치 대신 꽁치 통조림을 사 먹었다는 말이다. 유기농, 무농약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최저가 찾기에 바쁘다. 올해 2분기엔 아예 먹거리 소비지출이 감소했다. 전체 지출액은 늘었지만 물가상승분을 감안한 실질 소비는 줄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먹사니즘이나 모두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잘사니즘도 좋지만 식비까지 줄이는 판에 내수가 회복될 리 없다. 물가와의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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