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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관광과 예술을 억지로 묶으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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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오케스트라는 각기 다른 악기가 자기 음색을 낼 때 비로소 화음을 이룬다. 요즘 대구 문화행정을 보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예술은 고유한 차이를 존중할 때 조화를 이루는데, 우리는 종종 그것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으려 한다.

얼마 전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출범 당시 기대와 걱정이 함께 있었다.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공연장, 관광재단은 전문성이 달라 준비 없이 묶으면 갈등이 생긴다.

관광과 예술은 만나는 지점이 있다. 공연과 축제가 도시의 매력을 높이고 관광객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관광은 숫자와 성과를 중시하는 산업이고, 예술은 과정과 깊이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한쪽은 속도가, 다른 한쪽은 성찰이 본질이다. 차이를 존중하며 협력할 때 시너지가 나지만, 억지로 한 틀에 넣으면 예술은 본래의 목소리를 잃는다.

최근 진흥원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행정이 직접 살펴보겠다는 소식도 있었다. 무대 뒤 작은 삐걱임이 공연을 흔들 듯, 운영의 혼란은 시민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더 나은 길을 찾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단순한 교과목이 아니다. 미술은 빛과 색으로 이야기하고, 음악은 소리로 세계를 만든다. 연극은 언어와 몸짓으로 사회를 비추며, 무용은 호흡으로 삶을 새긴다. 이렇게 다른 언어가 모여야 도시의 문화가 풍요로워진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을 지우면 현장은 길을 잃고, 시민은 삶의 여유를 잃는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주말에 가족과 전시를 보고, 아이와 공연장을 찾으며, 작은 음악회에서 위로를 얻는 순간이면 충분하다. 나 역시 아이 손을 잡고 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다. 아이의 감정은 책 속 지식과 달랐다. 이런 경험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준다. 이런 순간이 줄어든다면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는 결국 시민이다.

앞으로 행정이 투명해지고, 각자의 고유성이 존중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시민이 작은 공연장에 발걸음을 옮기고, 지역 예술가들의 무대에 박수를 보낼 때 대구 문화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대구는 오페라, 미술, 연극, 무용이 균형 있게 뿌리내린 도시다. 이 다양성이야말로 대구의 자산이며, 지켜야 할 자랑이다.

문화는 성과표에서 자라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그리고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 위에서만 꽃을 피운다. 작은 무대의 예술이 대구의 미래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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