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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 겨울과 여름 캐나다 로키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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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캐나다 로키로 떠나는 두계절의 시간. 하태길 겸임교수
캐나다 로키로 떠나는 두계절의 시간. 하태길 겸임교수

마케팅 원론 수업에서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코카콜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학생들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곡선의 스펜서체 로고, 강렬한 붉은색, 볼륨감 있는 '컨투어병(Contour, '윤곽'을 뜻함)' 그리고 매년 겨울이 되면 등장하는 산타클로스와 북극곰 가족.

흥미로운 점은 아무도 '콜라의 맛'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비자 기억 속에 남는 건 이미지와 감성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콜라는 사계절 중 겨울에 가장 덜 팔리는 음료일 것이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오히려 그 겨울에 모든 것을 걸었다. 북극곰과 산타를 메인 모델로 내세운 것이다. 겨울철 매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역발상 마케팅이다. 겨울에도 콜라를 마시고 싶게 만들도록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계절 속 감성을 학습시킨 것이다. 이 전략은 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 브랜드를 감정의 기억 시스템으로 진화시킨 사례였다. 놀랍게도, 나는 이 전략과 아주 비슷한 감성을 두 계절의 캐나다 로키에서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정겨운 겨울밴프와 활기찬 여름밴프. 하태길 겸임교수
정겨운 겨울밴프와 활기찬 여름밴프. 하태길 겸임교수

◆밴프에서 두 계절의 시간

2025년 여름, 나는 겨울 여행자가 아니라 여름 트레커가 되어 다시 로키를 찾았다. 코끝을 시리게 했던 영하의 공기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도로 가득 눈이 쌓여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6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여름의 밴프(Banff)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이번 여행은 두 계절의 시간을 연결하는 나만의 비교 여행이 되었다.

목조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한 밴프 마을은 정겨웠던 겨울과는 달리 관광객들로 활기 가득했다. 1883년 설퍼산(Sulphur Mountain) 근처에서 온천이 발견되면서 조성된 밴프 마을은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 탄생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산속 작은 도시가 되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웅장한 산들이 영화 스크린이 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캐스케이드산(Cascade Mountain)은 북쪽에서, 런들산(Rundle Mountain)은 남쪽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밴프라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겨울에는 하얀 담요로 덮여 있어 구분할 수 없었던 마을 주변 산들이 여름 햇살을 받아 하나하나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메인 스트리트인 밴프 애비뉴(Banff Avenue)를 따라 북적이는 인파 속에 파묻히며 활기찬 분위기를 만끽했다. 특히 밴프 시내 거리 이름을 볼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곰이 출몰할 것 같은 베어 스트리트(Bear Street)부터 시작해서 캐나다 순록을 떠올리게 하는 캐리부 스트리트(Caribou Street)와 늑대의 기운이 느껴지는 울프 스트리트(Wolf Street) 등에서 그 이름 때문에 캐나다 야생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졌다.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서둘러 지나쳤던 표지판들이 이제는 소소한 여행의 재미를 얹어주었다.

내가 보우강(Bow River)을 기억하는 것은 1992년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이다. 실제 촬영지는 미국 보울더 강(Boulder River)이었는데 비슷한 발음 때문에 꽤 오랫동안 보우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젊은 브래드 피트가 강 위에 서서 플라이 낚시를 하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여섯 해 전 겨울에 보우강을 찾았을 때는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꽁꽁 언 얼음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있었겠지만 보이는 것은 묵묵히 쌓여 있던 흰 눈뿐이었다. 1954년 돌아오지 않는 강(The River of No Return) 촬영지를 알리는 표지판만이 이곳이 보우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겨울 정적 아래 보우강이 여름이 되어 흘러간다. 하태길 겸임교수
겨울 정적 아래 보우강이 여름이 되어 흘러간다. 하태길 겸임교수

여름 풍경은 사뭇 달랐다. 보우 폭포(Bow Falls)에서부터 물줄기가 막힘없이 콸콸 흘러내려 보우강으로 신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작은 바위에 발을 내딛었다. 발끝에 닿은 물보라가 튀어 올라 스크린 속 장면은 하얗게 부서지며 사라져가는 모습만이 남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생동감 넘치는 보우강에 겨울 정적이라는 기억 하나를 더하면서 나만의 여름 풍경으로 끝없이 흐르게 되었다.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와의 인상적인 재회도 있었다. 하얀 장벽이 된 빅토리아 산이 레이크 루이스와 맞물려 가와바타 야스나리(Kawabata Yasnari)의 소설 속 '설국' 풍경을 만들었다. 호수 앞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Fairmont Chateau Lake Louise)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름에 꼭 다시 와야지'하고 다짐했었다. 여름 레이크 루이스에는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호수 위에 낭만을 띄우고 있었다. 그 낭만은 에메랄드빛으로 환하게 번지며 다시 찾은 나를 맞이해 주었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레이크 루이스는 김연아 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김연아 선수는 벤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세계적인 피겨퀸이라는 자리에 우뚝 섰다. 2023년 한-캐나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캐나다관광청은 김연아를 홍보 영상에 등장시켰다. 인플루언서 마케팅(Influencer Marketing)의 주인공이 된 김연아는 눈부신 은반, 레이크 루이스 위에서 다시 한번 우아한 스케이팅을 했다. 겨울 관광객들은 꽁꽁 언 호수 위에서 김연아처럼 스케이트를 신고 레이크 루이스를 누비거나 카우보이의 썰매 마차를 타고 호숫가를 달리는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겨울의 호기심과 여름의 자부심을 서비스하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하태길 겸임교수
겨울의 호기심과 여름의 자부심을 서비스하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하태길 겸임교수

◆역발상으로 고객의 마음을 흔든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레이크 루이스 호수 앞에 자리한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는 많은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른다. 135년의 역사를 지닌 고풍스러움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레이크 루이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숙박 요금 때문에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호텔은 관광객이 줄어드는 겨울 비수기에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호텔 내부를 둘러 보며 카페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호텔을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카페에서 애프터눈 티와 디저트를 즐기며 레이크 루이스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방문객이 몰리는 시기이므로 투숙객만 카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희소성을 통해 '특별한 경험'이라는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겨울에 가야 카페를 즐길 수 있다"는 호기심이 생기고, "여름에는 투숙객만 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페어몬트 샤토 호텔은 희소성과 특별함을 경험으로 판매하는 역발상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다른 브랜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도로 풍경 역시 두 계절은 크게 달랐다. 여섯 해 전 겨울, 밴프로 향하던 도로는 눈으로 가득했다. 길옆 나무마다 주먹만한 눈송이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지만 눈속을 뚫고 들어가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두어 번 사고 현장도 목격했을 만큼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눈보라 속을 달리던 그 경험만큼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름은 도로에 쏟아진 햇빛에 눈은 사라지고 푸른 숲의 내음이 진하게 퍼지며 들꽃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만년설을 향해 달려가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설상차. 하태길 겸임교수
만년설을 향해 달려가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설상차. 하태길 겸임교수

밴프를 벗어나 앨버타(Alberta)와 브리티시 콜롬비아(British Columbia) 주 경계에 위치한 콜롬비아 아이스필드(Columbia Icefield)도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아이스필드는 겨울이면 눈과 얼음이 모든 길을 뒤덮어 겨울내내 폐쇄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연의 선택을 나는 충분히 존중한다. 그렇지만 설상차를 탈 수 없다는 점은 겨울 로키 여행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설상차는 전 세계에 단 몇 대밖에 없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희귀 차량으로 일부는 남극 기지에서도 사용된다. 남극의 얼음 위를 달리는 설상차와 로키산맥 빙하를 오르는 설상차는 같은 뿌리를 가진 형제인 셈이다. 예약된 시간이 되자 자동차 크기만한 바퀴가 아주 느린 속도로 다가왔다. 설상차에 몸을 싣자 만년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거대한 발자국이 움직이며 설상차 바퀴 아래 만년설의 짓눌린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렸다.

"해마다 얼음의 경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의 여행자에게는 빙하지대를 걷는 이 경험이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설상차 가이드는 설명했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팬데믹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기간이었으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은 자연의 가치를 배가시켰다. 겨울의 고요와 여름의 활기, 로키의 두 얼굴은 계절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겨울과 여름을 비교해 본 이번 여행은 삶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겨울처럼 차분히 멈춰 서야 할 때도 있고, 여름처럼 힘차게 흘러야 할 때도 있다는 것. 밴프의 자연은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왔었다. 여섯 해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장소에서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사색의 시간, 그것이 이번 여행이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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