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먹이가 든 그릇을 문 앞에 갖다 놓았다. 고양이는 언제나처럼 오전 8시 무렵에 문 앞으로 왔다. 그는 고양이가 먹는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동정심은 자긍심으로 고양됐다.
그가 고양이를 돌본 지 두어 달이 지났다. 꾀죄죄한 몰골로 허청거리던 고양이의 상태도 한결 나아진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고양이는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짜식이 배가 불렀군."
허탕을 친 그는 하루 날을 잡아 문 앞에서 고양이를 기다렸다. 정한 시간에서 한참을 지나서야 나타난 고양이에게 그는 한 번만 더 늦으면 먹이를 주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도 고양이는 지각을 했고 당연히 그릇은 없었다. 며칠 허탕을 친 고양이는 더 이상 그곳을 찾지 않았다. 사실 고양이는 나이도 꽤 됐을 뿐만 아니라 그 즈음 심각한 병을 얻어 기력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버스 뒷자리는 또 다른 관객석이다. 자주 타는 그 버스의 운전기사를 처음엔 사명감이 남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는 착석이 더딘 노인들에게 습관처럼 빨리 앉으라고 말했다. 보따리를 든 채 비척거리던 노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노인은 허둥지둥 자리에 앉다가 보따리를 놓쳤다.
그 뒤로도 비슷한 행태가 이어졌다. 조급증을 잘못 해석한 걸까? 의문이 생겼다. 물론 운전기사는 승객의 안전을 위한 방편으로 그리했을 것이다. 반복하다 성마른 행동 패턴으로 굳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을 관장하는 자의 어떤 습관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규범으로 전이되기 쉽다. 규범에 복속된 이는 낯선 습관을 장착하기 마련이다. 운전기사는 노인들의 사정이 제각각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가방, 보따리 등속의 소지품도 변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노인들의 건강 상태이다. 같은 연배라도 성큼성큼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신기신 걸음을 떼는 이도 있다. 이 같은 사례가 시사하는 건 선의의 규범도 그것을 절대시할 경우 독선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규범을 접한다. 버스 안처럼 제한된 공간은 물론 학교와 회사 같은 다수집단 시설, 관청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 외에도 공연장, 광장, 식당, 공원 등등 어느 곳이든 그 나름의 규범이 있다.
규범은 강제성을 띠며 또 그래야만 질서가 유지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정 여부를 막론하고 규범에 복무해야 한다면 그건 규범을 위한 규범이다.
인간을 위한 규범이 돼야 한다. 버스라는, 잠깐의 시간을 의탁하는, 그렇기에 웬만한 일은 묵인하고 지나치는 공간에서 별쭝스레 궁리하는 내게 별일 아닌 것을 확대해석하느냐, 침소봉대 아니냐 한다면 할말이 없다. 그냥 내 규범이라고 아니, 습관이라고 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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