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요인 또는 성장 과정의 발달지연으로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의 지원체계가 과제로 떠올랐다. 전체 장애인 수가 감소하는 추세 속에 발달장애인만큼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돌봄 주체는 그 부모로 인식되고 있다. 자녀의 인지·의사소통 어려움으로 일상의 작은 결정부터 넓게는 생애주기별 과업까지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다.
성인 발달장애를 둔 가정의 불안은 더욱 깊다. 부모들도 이미 노년의 문턱에 놓이면서 홀로 남겨질 자식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평생 돌봄' 굴레 속에서 신체적·정신적 소진을 경험한 부모들은 금방이라도 가정이 무너질 것 같다고 말한다.
◆ 급증하는 발달장애인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발달장애는 크게 지적과 자폐 스펙트럼으로 구분된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의료계는 한 가지 요인보다 유전·환경 등 여러 원인에 의한 복합적인 장애로 보고 있다.
최근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적장애와 자폐 스펙트럼장애 모두 유전적 취약성, 염색체 이상, 뇌 발달 및 연결 이상, 신경전달물질 조절의 불균형 등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뚜렷한 발병 원인을 찾지 못한 새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통계데이터포털에 따르면 2021년 25만5천150명이던 발달장애인은 지난해 28만672명으로 약 10%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장애인 수가 1만여 명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발달장애인의 증가세가 유독 두드러진다.
발달장애 아동의 출현율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18세 미만 전체 장애아동 중 발달장애 비율은 2021년 68.5%에서 지난해 74.8%까지 치솟았다. 장애 진단을 받아도 사회적 시선·거부감으로 장애인 등록을 미루는 부모들까지 고려하면, 실제 발달장애 규모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동기부터 발현하는 발달장애는 전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된다. 언어장애를 동반하는 대다수 발달장애인들은 소통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자기표현이나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과 사회적 자립이 어렵다. 30세 이후부터는 신체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조기 노령화를 겪는다.
대구 한 소아신경과 전문의에 따르면 발달장애 가운데 자폐 스펙트럼의 경우, 뇌전증(간질) 유병률이 정상 발달인 대비 40배 높다. 이외에도 퇴행성 신경질환과 파킨슨병, 치매 등 건강상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발달장애인은 다른 장애 유형보다 가족 돌봄과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구원)의 전수조사를 살펴보면, 발달장애인 2천649명 중 51.6%(1천368명)가 하루 5시간 이상 가족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 발달장애인 부모 상당수가 돌봄 부담
발달장애인 돌봄을 수행하는 경우는 부모가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연구원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1천300명의 주돌봄자 가운데 부모의 비율이 78.6%에 달했다. 형제·자매의 경우 6.9%에 그쳤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돌봄을 수행하고 있다. 발달장애 평균 발견 시기는 7.3세로, 자폐성의 경우 3.1세로 나타났다.
대구 남구 대명3동에서 자폐성 장애 자녀를 돌보는 최태선(76·가명) 씨도 마찬가지다. 아들 상훈(46·가명) 씨가 3살 무렵, 호명 반응이 없고 언어 구사가 안 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여든을 눈앞에 둔 태선 씨는 그런 상훈 씨를 40년이 넘도록 돌보고 있다.
학령기 이후에는 돌봄 부담이 극심해졌다. 만 18세 이전에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상훈 씨가 졸업한 뒤로 줄곧 집에만 있어서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서비스원)이 발달장애인 부모 3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령기 대비 성인기에 돌봄 시간이 늘어났다는 비율이 41.6%로 절반에 가깝다.
수시로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것 또한 가족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도전적 행동은 자해 또는 위협, 물건 파손 등으로 나타나는 발달장애의 대표적 증상이다. 한 조사에서는 일주일에 1~2회 이상 도전적 행동을 보인다는 응답이 77.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전적 행동은 상훈 씨처럼 자폐성 유형에서 더 많이 관찰되고 있다. 위협의 모습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상훈 씨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머니를 힘으로 밀치고 있다.
특정 관심사나 사물에 대한 집착 또한 발달장애의 증상 중 하나다. 상훈 씨는 전축과 같은 '옛날 라디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태선 씨 집 안 곳곳에는 라디오가 허리춤까지 쌓여있었다. 거실에만 40개가 넘고 창고에는 줄잡아 100여개가 뒤엉켜 있었다. 그럼에도 상훈 씨는 수시로 어머니에게 새 라디오를 구해달라고 요구한다.
태선 씨는 "고물상을 찾아서 개당 2~3천원씩 사왔지만 워낙에 옛날 라디오라 이제는 구하는 것도 어렵다"며 "아들한테 '새로 살 수 없으니까 있는 것들로 쓰자'고 해도 자폐라 이해를 못 한다. 그럴 때면 하루에 2시간밖에 안 자고 울어버리는데,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돌봄 한계에 직면한 부모들
성인이 되면 취업과 사회 활동을 통해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것이 일반 가정의 모습이나, 발달장애 가정에서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지난 2022년 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1천300명 가운데 취업한 비율은 20.3%에 그친다. 이마저도 보호작업장(30.9%)이나 근로사업장(9.3%) 등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비중이 높다.
자폐성 장애인 성수(32·가명) 씨를 돌보고 있는 김선희(64·가명) 씨도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아들을 보면 막막함이 자욱하다.
성수 씨는 8년 전만 해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문서 파쇄'와 같은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된 시점에 다른 발달장애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선희 씨는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선희 씨는 주말도 가리지 않고 매일 새벽 대구 달서구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달성군 현풍으로 가고 있다. 아들이 집에만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뇌전증이 올 수 있어서다.
발달장애 자녀의 건강에 많은 시간을 쏟는 부모들은 정작 본인 몸 관리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원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주돌봄자 104명 중 자신의 질병·건강을 챙길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비율이 63.4%로 절반을 크게 웃돌았다. 선희 씨도 무릎 연골에 석회가 생겨 수술을 권유받았으나 40일간 보행이 어렵다는 말에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희 씨는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다. 제가 걷지 못하면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서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며 "너무 아플 때면 잠시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평생 돌봄'의 굴레 속에 놓인 부모들은 정신적 어려움도 크게 호소하고 있다. 연구원 조사 결과, 심리상담을 고려한 발달장애인 보호자 489명 중 35.2%가 우울증·불안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한 이들도 268명에 달했다.
선희 씨는 "너무 힘들어서 아들과 차를 타고 저수지를 다녀오기도 했다"며 "우리가 구조되지 않게끔 사람이 없는 시간을 생각해서 물에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다시는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뉴스에서 발달장애인과 동반 자살했다는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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