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길 위의 트레킹, 엘레토타에서 이달가신나로
스리랑카의 고요한 산골마을 엘레토타(Ellethota)의 샤모디(Chamodi) 집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걷는 일은 일상이지만,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모험이었다. 마을 주민 몇 명이 가이드와 함께 동행하며 여정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녹차밭을 지나 언덕 숲길로 오르자, 정글속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났다.전체거리는 9km정도라고 하는 쉬운 산책길로 생각했지만 쓰러진 나무를 넘고, 무성한 숲을 헤치며 걷는 구간도 많았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고, 산허리 사이로 기차가 그림처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땀을 흘리며 오르니 마침내 철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부터는 철길을 따라 걷는다. 이곳에서는 철로를 걷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 침목을 밟으며 리듬을 맞추고 터널을 지나면, 어느새 해발 1,615m의 이달가신나(Idalgashinna) 역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기차 시간표는 있지만, 스리랑카의 기차는 늘 느리게 다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길은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며, 언덕과 숲이 어우러진 장관을 보여준다. 가이드는 예민한 청각으로 멀리서 오는 기차 소리를 미리 감지하고, 터널 안에서는 대피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실제로 기차는 매우 느리게 달리므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여유가 충분하다.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 푸른 차밭과 시골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약 3시간의 트레킹 끝에 드디어 이달가신나역에 도착했다.
1893년에 건설된 이달가신나역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힌다. 남부와 동부를 가르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이 작은 역은,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한층 더 아담하게 보인다. 승강장은 하나뿐이며, 그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언덕과 흩어진 집들이 평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장엄한 일출과,오후에 역을 감싸는 안개구름은 이곳을 마법같은 장소로 만든다.
◆ 칼립소 열차, 바둘라로 향하는 음악의 여정
이달가신나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스리랑카철도 메인라인(Main Line)의 종착역 바둘라(Badulla)로 향한다. 이 구간은 '칼립소 열차(Calypso Train)'로 불리는 특별 관광열차가 달리는 노선이다. 반다라웰라(Bandarawela)에서 바둘라까지 이어지는 이 노선은 나인 아치 브리지(Nine Arch Bridge)와 데모다라(Demodara) 루프 등 스리랑카의 상징적인 철도 명소를 지나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차여행' 중 하나로 꼽힌다.
칼립소 열차는 기관차, 목조 객차, 식당칸, 전망칸, 그리고 상부가 오픈된 라이브 음악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객들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구릉지대의 초록빛 풍경을 감상하며, 기차의 오픈된 라이브 음악칸에서는 흥겨운 칼립소 라이브 공연이 이어진다. 음악과 풍경이 어우러진 이 독특한 여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축제다.
열차는 나인 아치 브리지 위에서 약 15분간 정차해 탑승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또한 데모다라 루프터널을 통과하며, 기차가 자신의 선로 위를 원을 그리며 돌아서 높은 고도 차이를 극복하는 장면은 스리랑카 철도의 백미다.
엘라(Ella)에서 바둘라까지 28km 구간은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차밭과 계곡, 고풍스러운 마을을 지나가는 경로는 사진작가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칼립소 음악의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기차 위에서, 여행자는 자연과 문화의 조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 바둘라, 기차여행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곳
메인라인의 종착역 바둘라는 해발 680m에 위치한 인구 5만의 작은 도시다. 도시를 감싸 흐르는 바둘라 오야 강 덕분에 언제나 공기가 맑고 시원하다. 영국 식민지 시대, 차 농장을 통해 생산된 홍차를 콜롬보로 운반하기 위한 내륙 철도의 종점으로 발전했다.
바둘라에서는 산길 트레킹, 전통시장 탐방, 그리고 사원 순례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그중 바둘라 역에서 가까운 도심에 있는 무티양가나 라자 마하 비하라 사원은 부처가 생전에 세 번째로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설법을 했다고 전해지는 성지다. 인다카 왕이 부처의 머리카락과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사리탑은 이후 여러 왕들에 의해 확장되고 재건되었다.
또 다른 명소인 던힌다 폭포(Dunhinda Falls)는 바둘라에서 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높이 64m의 웅장한 낙차를 자랑한다. 폭포에 이르기까지 약 1.5km의 트레킹 길을 따라가면 울창한 숲과 새, 나비, 이국적인 식물을 만날 수 있다. 폭포수는 깊은 웅덩이로 떨어지며, 마치 신부의 베일처럼 부드럽게 흩날리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룬다.
지나던 길, 아이들의 "코리아!"라는 외침에 이끌려간 학교에서 환한 얼굴의 학생들이 반긴다. 여행자는 작은 선물과 이야기로 그들과 금세 친구가 되었다. 꿈과 동심이 가득한 교정, 맑은 눈빛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마음이 맑게 씻기듯 힐링을 얻는다.
◆ 바둘라의 숨은 보물, 다리 위의 역사
바둘라에는 역사와 예술이 깃든 다리들이 있다. 16세기 담바데니야 시대에 건설된 보고다 목재 다리(Bogoda Wooden Bridge) 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로, 나무못만을 사용해 지어졌다. 기와지붕 아래에 고대 문양이 새겨진 난간이 이어지며, 모든 구조물이 한 그루의 나무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지금은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으며, 다리를 건널 때는 신발을 반드시 벗어야 한다.
또 하나의 명물은 할라바 강철 다리(Halaba Steel Bridge) 다. 1919년 건설된 이 다리는 길이 120m에 달하며, 트러스 형태의 강철구조물 위에 나무 침목이 놓여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여주는 유산으로, 지금도 견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리 위를 걸으며 시원한 강바람과 푸른 언덕의 풍경을 감상하면,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듯한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이 두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스리랑카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손길이 남긴 유산이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바둘라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마음속에 남은 철도종착지 바둘라의 풍경은 스리랑카 기차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철길을 따라 걷고, 음악이 흐르는 기차를 타며, 폭포와 다리를 찾아 나선 하루는 어느새 한 폭의 풍경화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스리랑카의 기차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간의 여행'이다. 그 길 끝에서 만난 바둘라의 고요함은 여행자의 마음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감싼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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