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끝나 가는 시점에 많이 쓰는 어휘 중 하나가 '마무리'이다. '일의 끝맺음'을 의미하는 '마무리'는 긍정적 가치가 내재한 어휘는 아니지만, 보통 미완을 완성으로 바꾸는 시간적 단계로 인식하여, 성과가 내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이다. 따라서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광경으로 마무리를 이미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생계 영위를 위해 분주했던 서민들에게 떠오르는 것은 반대로 '살풍경(殺風景)'이 아닐까? 살풍경은 만당(晩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의산잡찬(義山雜纂)」에서 유래한 말로, 그 내용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꽃 사이에서 길을 비키라고 소리 지르는 짓인 '화간갈도(花間喝道)'는 아름다운 풍경을 권력자가 위세와 소란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꽃을 보며 눈물 흘리는 짓인 '간화누하(看花淚下)'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을 어기는 반상식적 행위이다. 이끼 위에 자리를 펴는 짓인 '태상포석(苔上鋪席)'은 자연의 순수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부조화적 행위이다. 수양버들을 찍어 버리는 짓인 '작각수양(斫却垂楊)'은 아름다운 자연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폭력적 행위이다. 꽃 아래에서 잠방이를 말리는 짓인 '화하쇄곤(花下曬裩)'과 맑은 샘에 발을 씻는 짓인 '청천탁족(淸泉濯足)'은 미적 정서를 해치는 저속한 행위이다. 봄놀이에 음식가지 등 짐을 잔뜩 싣고 가는 짓인 '유춘중재(游春重載)'는 여유로운 정취를 잃고 속세의 욕망에 얽매여 즐거운 일조차 부담과 피로로 변질케 하는 행위이다. 석순(石筍)에 말을 매는 짓인 '석순계마(石筍繫馬)'는 뛰어난 경물을 하찮은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이다. 달빛 아래에서 횃불을 드는 짓인 '월하파화(月下把火)'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운치를 조잡한 인공물로 해치는 행위이다. 과수원에 푸성귀를 심는 짓인 '과원종채(果園種菜)'와 꽃 시렁 아래에서 닭과 오리를 기르는 짓인 '화가하양계압(花架下養雞鴨)', 거문고를 불 때 학을 삶아 먹는 짓인 '소금자학(燒琴煮鶴)'은 보잘것없는 이윤을 만들거나 생계를 영위하기 위하여 미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산을 등지고 누각을 짓는 짓인 '배산기누(背山起樓)'는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살풍경'은 속물적이고 격조가 낮아 고상한 흥취(興趣)를 파괴하는 행위를 이른다. 그런데 현재의 관점에서 살풍경은 인간이 생계 유지를 위한 현실적 필요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적 욕구 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으로서, 가치 갈등이나 인지 부조화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살풍경'이라 불린 사람도 있었다. 정화(鄭和)라는 사람이 선천(宣川) 부사(府使)로 임명된 유영길(柳永吉)에게 바다 갈매기의 알 12개를 올리자, 유영길이 "그대가 바닷가에 살면서 12마리의 갈매기를 태어나기도 전에 먼저 죽였으니, 훗날 마음을 비우고 아무 욕심 없이 갈매기와 벗하여 노닐 수 있겠는가?"라고 비웃었다. 이래서 정화는 '살풍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삶이 고단해 인지상정을 어기는 반상식적 행위, 순간적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 또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심미적 욕구를 저속하게 전락시키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그 무엇보다 저속한 살풍경은 권력자의 알량한 위세 보이기나 가치 관념 없는 출세 지향 행위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목전의 결과물이 살풍경에 해당하지 않는가 진지하게 살펴볼 일이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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