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아버지가 살던 시절의 경산을 떠올리곤 한다. 겉으로 보자면 그때의 경산은 지금보다 훨씬 소박했고, 도시의 규모 또한 작았다. 그러나 미래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시절의 경산과 지금의 경산은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다. 도로는 넓어졌고 건물은 높아졌지만, 정작 도시가 가야 할 방향과 철학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버지의 경산이 지금의 경산과 크게 다르지 않고, 지금의 경산 또한 다음 세대의 경산과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우리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이다.
경산은 지난 20여 년 동안 기대에 부응하는 성장 곡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사이 청년 인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도시 내부에서는 희망의 결핍이 점점 더 짙어졌다. 한때 대학도시로 불렸으나 지방대학의 위기 앞에서 흔들렸고, 산업도시라는 이름에 비해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은 정체된 지 오래다. 도시의 체력도, 사고의 깊이도, 미래를 향한 추진력도 동시에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의 원인은 복잡하지 않다. 도시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도시가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지도력, 다시 말해 도시의 구조적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변화의 타이밍을 읽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역할이 도시의 기대에 부응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지금이야말로 냉정한 점검이 필요한 때다. 도시의 시간이 오래도록 정체되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경산은 전국에서도 드문 구조적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생활권과 경제권은 대구와 깊이 맞닿아 있으나, 행정적 소속은 경상북도에 있다. 세금은 경북에 내고, 일상생활은 대구에 의존하면서도 정작 대구의 주요 제도와 정책에서는 한 발 비켜 서 있는 도시가 바로 경산이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 속에서 경산은 오랜 시간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립하지 못한 채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나는 이 구조를 단순한 한계로만 보지 않는다. 이 구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산은 '대구의 끝'이 아니라 '대구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모색할 수 있다.
이제 경산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이미 하나의 생활권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구 수성구와의 협력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학군 공유를 포함한 교육권 협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경산의 청소년들은 이미 학업과 진로 준비의 상당 부분을 대구에서 해결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 또한 두 도시를 오가며 일하고 생활하고 있다. 현실은 이미 하나의 도시처럼 움직이고 있지만, 제도와 정책은 여전히 행정 경계에 묶여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괴리가 오늘 경산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다.
교육 협력은 단순한 교육 정책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도시 간 생활권과 인적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적 동맹이며, 청년 인구를 지켜내고 도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경산의 다음 20년은 과거의 연장선 위에서 자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산은 전혀 다른 미래의 도시로 다시 그려질 수 있다.
아버지의 시대에 경산이 멈춰 있었다면, 우리 아이들의 경산은 더 이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도시의 미래는 기다리는 이의 몫이 아니라, 선택하고 실행하는 이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더 담대한 상상력과 더 큰 결단, 무엇보다 책임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경산이 다시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완성해 갈 수 있는 길은 분명하다. 교육에서 시작해 생활권 협력으로 확장되고, 나아가 대구·경산 공동 성장 체제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시 전략이다. 경산이 더 이상 '대구의 끝'이 아니라 '대구의 시작'으로 다시 서는 길,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도시의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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