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빌릴 수 있다면〉
벤치에 앉아 햇살 샤워를 즐기고 있었다
똘망한 아이 하나가 토닥토닥 걸어오더니
내 옆자리에 손을 얹는다
엉덩이를 비켜 아이가 앉을 틈을 마련하려는데
아이의 손을 낚아챈 엄마가 나무라는 소리를 한다
'아무 데나 앉으면 안 돼.'
내가 앉은 자리가 아무 데나가 되었다
아무 데나에 앉아 있던 나도 결 거친 아무나가 되는 순간이다
화끈거리는 낡은이의 눈에
보도블록의 틈새에서 자란 민들레 홀씨가 날린다
사방으로 흩어져 내년 봄의 기약이 될,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 한 줌에서
강렬한 아침을 읽고
책장을 늘 설렘으로 가득 채웠던,
책갈피 틈에 끼워둔
들국화 한 송이도 떠올린다
아이 엄마의 마음속에서 작은 틈을 빌릴 수 있다면
얇고 보드라운 여유를 심고 싶다
어쩌면 그곳에서 구름이 빚어낸 고래가 춤을 출 수도 있고
반짝이는 바람의 비늘 하나를 낚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내 옆에 앉을 수 있지 않을까?
<시작 노트>
필자는 대구의 신천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신천은 물과 풀과 꽃과 나무와 햇살과 바람을 찾아 자주 찾는 곳이다. 멍청히 앉아 있기도 좋고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힘을 얻기도 하는 곳이다. 햇살 좋은 어느 봄날, 벤치에 앉은 내게로 다가온 어린아이와 아이의 손을 낚아채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 사이에서 생각은 같으나 표현의 차가 크게 벌어졌다. 내가 배려의 몸짓으로 아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과 아이 엄마가 나를 경계하듯 바라보는 눈의 차이는 분명 엄청난 괴리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이다. 서운해하지 말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면 내 마음도 편해지는 것과 같다.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너도 옳고 나도 옳을 수는 없다. 따지기 이전에 그럴 수 있다고 한 번쯤 너그러워지는 여유가 필요하리라. '틈'이라는 말은 '벌어진 사이'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유기물과 유기물의 간극에서 통용된다. 생각 사이의 틈은 불신을 낳을 수 있고 유기물의 틈은 벌어질수록 합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벌어진 틈새를 한발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틈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영글지 않을까? 그 여유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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