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념치킨의 시조이자 치킨무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윤종계 맥시칸치킨 설립자가 지난달 30일 경북 청도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고인은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인쇄소 운영 실패 후 1970년대 말 대구 효목동에 6.6㎡(2평) 남짓한 '계성통닭'을 차린 것이 전설의 시작이다. 당시 프라이드치킨의 퍽퍽함을 해결하려 6개월간 연구한 끝에 물엿과 고춧가루를 배합한 붉은 양념 소스를 완성했다. 오늘날 업계 표준이 된 '염지법'(닭고기를 숙성해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공정) 역시 고인이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기술이다.
고인은 생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치킨 속살의 퍽퍽함을 잡으려 김치 양념까지 써봤지만 실패했다"며 "동네 할머니의 제안으로 물엿을 넣자 비로소 맛이 살아났다"고 회고했다. '손에 양념이 묻는다'며 낯설어하던 소비자들은 곧 중독적인 맛에 매료됐고, 전국에서 비법을 배우려는 이들이 대구로 몰려들었다. 치킨의 단짝인 치킨무도 고인의 작품이다.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무와 식초, 사이다를 섞어 내놓은 것이 치킨무의 시초가 됐다.
1985년 브랜드 '맥시칸치킨'을 공식 출범시킨 고인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 국내 최초로 닭고기 TV 광고를 제작했고, 아역배우 '순돌이' 이건주를 모델로 내세워 신드롬을 일으켰다. 한때 전국에 1천700여 개 가맹점을 거느리며 치킨 왕국을 건설했다.
시련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무리한 사업 확장과 기계 도입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며 200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개척 정신은 대구 치맥 문화의 밑거름이 됐다. 하림 김홍국 회장은 과거 고인과의 인연을 잊지 않고 재기 자금을 지원하는 등 끈끈한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인은 대구치맥페스티벌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지역 문화 발전에도 끝까지 헌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황주영 씨와 아들 윤준식 씨 등이 있다. 빈소는 대구 전문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1일 발인을 거쳐 경북 청도대성교회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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