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항구다」(이난영, 1942)라는 흘러간 옛 노래가 있다. 사람들은 노래 제목이 뭐 그렇냐고 한다. 목포가 항구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목포가 '배 닿는 입구'라는 뜻 아니냐, 그런 싱거운 노래 제목이 어디 있느냐, 그런 반응을 보인다. 나도 이 노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내심 "뭥미?"라고 생각했다. 「목포의 눈물」(이난영, 1935)의 배 다른 동생인가? 그런 염도 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국어 선생이 되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은 "목포가 어디 한두 마디 말로 설명이 되겄냐?"라는 뜻이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목포는 항구다!"는 지역민들의 애환과 사랑과 자부가 한데 섞여 있는, 이를테면 '말을 넘어서는 말'이다(프랑스의 한 고명한 문학이론가가 "문학의 언어는 언어가 자살할 때 쓰는 무기다"라고 말했다). 경주를 사랑하는 나는 딱 그와 같은 어조와 함의로 "경주는 경주다!"라고 말하고 싶다.
경주는 모성(母性)의 도시다. 굳이 가까운 데서 그 대칭을 찾는다면 안동을 들 수 있겠다. 안동은 부성(父性)의 도시다. 안동은 부적(不的) 권위가 살아있는 유구한 종택들과 서원이 잘 보존되어 있는 국내 최대의 양반 도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소를 모성과 부성이라는 개념으로 분별하는 일이 가능한가? 굳이 그 원류를 찾는다면 프랑스 역사학계의 아날학파를 들 수 있다. 그들에게서는 '심성사(心性史)'라는, 역사학계의 이단아 같은, 보통 사람인 우리에게는 꽤나 낯선 말을 들을 수 있다. 왕조사, 경제사, 문화사 등등과 같은 차원에서 심성사를 역사학의 한 줄기로 상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구조냐 인간이냐를 묻는 질문에 "구조다!"라고 대답한 사람들이다. 인간의 의지보다 더 힘센 요소(삶의 구조)가 역사의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센 외부 요소 중에 기후환경이나 장소환경도 단단히 한 몫 한다고 여겼다. 지중해 연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중동의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 경제, 종교, 문화에 대해서 똑같이 생각할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아날학파적으로 보면, 경주가 모성의 도시로 인식되게 하는 첫째 환경은 천 년 이상 경주를 지켜온 신라 고분(古墳)들이다. 본디 인공적인 것이지만 후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자연'으로 인식되는 것들이다, 주로 왕이나 왕자나 공주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신라 고분은 저잣거리와 멀리 떨어진 산 구릉이나 벌판에 홀로 떨어져 있지 않다. 도심에 있다. 일부 외부에 존재하는 고분들도 있지만 태반은 도심에 존재한다. 그러면서 그 규모가 엄청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죽은 자의 거소(居所)를 그렇게 가까이 둔 신라인들의 '심성사'의 핵심 사관(史觀)은 무엇일까? 굳이 삶과 죽음을 둘로 보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큰 죽음은 크게 부활해서 후손들의 삶에 신통스런 영적 활력을 부여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런 특별한 장묘문화는 생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라인들에게는 거대한 도심 분묘가 새 생명을 잉태하여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어머니의 복부(자궁)와도 같은 것이었다. 부활의 공간으로서, 모든 살고 죽는 것들을 제 한 몸으로 감싸는 특별한 장소 상징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신라 고분의 심성사를 집단 부활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1890~1936)나 칼 융의 『인간과 상징』(1964) 등과 같은 문화인류학적, 심층심리학적 고찰을 담은 책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 다음은 경주의 진짜 자연 환경이다. 경주 지역은 산과 들이 조화롭고 기후가 온화하다. 평지가 넓게 퍼져 있어 농토도 많다. 강우량도 인근 다른 지역들보다 압도적으로 풍부하다. 한 여름에 경주를 지나다 보면 종종 폭우가 쏟아져서 운전에 애를 먹는 상황을 맞이한다. 젊은 시절 감포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엄청난 폭우를 만나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적도 있었다. 그 뒤로도 그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런데도 경주가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는 말은 여태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천혜의 장소이니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포용과 융합의 세계 원리, 모성적 심성이 이 땅에 대유(大有, 크게 있음)하는 게 하등 이상할 바가 없다는 게 내 아날학파적 추리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경주는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공간 아우라가 있다"라는 통념이다. 그런 생각이 널리 퍼져 있어서 대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경주에 내려와 안빈낙도를 즐기는 교양 명사(名士)들이 많다. 소설가, 화가, 공예가, 법률가, 교육자, 출판사업가, 커피전문가 등, 내가 아는 분만해도 대여섯 집이 넘는다. 모르긴 해도, "경주는 어머니의 땅이다"라는 것이 그분들의 심층의식(굳이 무의식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면 경주 땅에서 가장 '제 한 몸으로 감싸는 모성'이 넘치는 지역이 어디인가? 만약 내가 이주를 해서 심신을 편안하게 누일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인가? 그런 생각으로 유심히 보아둔 곳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반월성과 경주박물관 뒤편의 고즈넉한 마을이다. 앞은 반월성, 뒤는 낭산이 포근하게 아담한 평원을 품어주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형 지세다. 수 년 전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혼자서 차를 몰고 경주에 들렀다가 그 언저리에 멈추어 서서 망연히 한참을 머물렀던 적이 있다. 두어 달 전에 문학 강연 행사가 있다고 놀러오라는 전갈을 받고 경주에 갔다가 뒤풀이 회식 때 그 말을 꺼냈더니 앞자리에 앉아계시던 경주 문협 관계자분이 반색을 하며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통 매물로 나오는 집이 없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본디 부동산 풍수는 그쪽 심안(心眼)이 열린 이들에게만 보이는 신비주의 영역인데 강호의 고수를 만나서 지극한 동병상련을 느끼고 왔다.
다른 한 곳은 진평왕릉이 있는 보문리 진평재 인근이다. 진평재라는 멋진 한옥을 필두로 이미 많은 세련된 신축 주택들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뒤로는 명활산성을 두고 멀리 서남쪽으로 남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천하일품이다. 그곳에 아직 빈 터가 좀 남아 있을 때 우연히 그곳에서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 땅금을 물어보기도 했었다. 아주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달 전에 진평재 주인장께 들은 이야기로는 그때보다 금이 많이 내려갔다고 한다. 은근 권하시는 눈치였지만 이제는 내 나이가 그렇게 쉽게 사는 곳을 옮길 때가 아니어서(정든 주치의가 서너 분 계신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청산에 살으리랏다!"라는 외침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경주라는 어머니의 땅이 지근에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행을 즐기는 것이 현재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다짐한다. 돌아오는 길에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따끈한 황남빵 한 상자를 사 오는 것도 잊지 않고 챙기면서.
소설가·대구교육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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