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애지중지 현지' 논란 차단"/"'애지중지 현지 누나', 화려하게 국민 앞에 등장"/민주당에서 일제히 엄호에 나선 "애지중지 현지"?! 베일에….
한 동안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가열되었다. 이런 와중에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김 실장을 애지중지한다는 뜻으로 '애지중지 현지'라는 말을 만들었다.
애지중지(愛之重之)의 애는 '사랑하다', 중은 '소중히 여기다'의 동사이다. 지는 앞의 애와 중이, '사랑'과 '소중'이라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임을 나타내는 어조사이다. 다만 문장에서 주어나 목적어가 분명하면,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 '이, 그'로 볼 수도 있다. 애지중지만이 아니라 "사랑하고 공경하다"는 '애지경지'(愛之敬之)나 "왼쪽으로 하다가 오른쪽으로 한다"는 '좌지우지'(左之右之)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지' 자를 '가다'라는 동사로 보고 그냥 '갈 지'라고 읽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갈지자 하면 "그 사람은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걷는다"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불안스레 지그재그로 걷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 자의 용례는 의외로 복잡하다.
그런데, '애지중지'는 어디에 왔을까. 먼저 『맹자』 「이루하(離婁下)」에는 '애지/경지(愛之/敬之)'라는 말이 보인다. 즉 "애인자(愛人者), 인항애지(人恒愛之), 경인자(敬人者), 인항경지(人恒敬之)"이다. "남을 사랑하는 이가 남의 사랑을 받게 되고, 남을 존경하는 이가 남의 존경을 받게 된다"라고 풀이된다.
이것을 축약하면 '애지경지' 네 자가 된다. 애지경지는 『소학(小學)』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편집한 『사자소학(四字小學)』에도 보인다. 참고로 '애지○지' 식의 표현으로는 "사랑하고 아깝게 여기다"는 '애지석지'(愛之惜之), "감사하고 은덕으로 여기다"는 '감지덕지'(感之德之)가 있다.
한편, 애지중지라는 사자성어는 고대 중국의 고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후한의 마원(馬援)이 형의 아들들 마엄과 마돈에게 보내 훈계하는 편지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 가운데 드물게 보인다: "용백고(龍伯高)는 돈후하고 신중하여…내가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니(愛之重之) 너희들도 그를 본받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맹자』나 『소학』을 사랑했다. 그런 탓에 '애지경지'란 말에 익숙하였다. 여기서 '경'을 '중'으로만 바꾸면 바로 애지중지가 된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고전에서는, 『다산시문집』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애지중지라는 말이 눈에 띈다. 문학 쪽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마디로 우리는 오래전부터 애지중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고 할까. 더구나 우리 문화에서는 '정(情)'을 중시하지 않는가.
"정에 울고, 정에 웃고∼" "어차피 가실 바엔 정마저 가져가야지∼" "정 때문에 나는 어떡해∼" "다정도 병인양 하여∼" "정한십년기(情恨十年期: 정과 한이 서린 10년 세월)∼"처럼, 정이 줄줄 흘러넘치는 나라다. 그런 나머지 정 때문에 병도 나고 한도 되긴 했으나, 요놈의 정 많은 문화에서 애지중지라는 말이 애용된 것은 당연하리라.
더구나 '○지○지'라는 사자성어는 우리 정서에 딱 맞는 표현이랄까. 그 유전자는 이미 시조에서, 초장・중장의 글자 수가 '3434'나 '3444'로 돼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처럼 네 자, 네 자로 돼 있으면 흥얼거리기도 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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