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선옥이, 엄마, 잘 있나? 이거 들리나? 어…엄마 비오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2006)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의 배경은 강원도 영월이다. 한때 잘나가던 록가수 최곤(박중훈)은 빠듯한 주머니 사정으로 내키지 않은 지역방송 라디오 DJ를 맡는다. 그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첫 곡으로 골라 나름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라디오 볼륨을 끄거나 낮추며 등을 돌린다. 이후 그는 대충대충 방송을 이어간다. 급기야 라디오 부스에서 다방 커피까지 시키고는 김 양에게도 한마디 해보라고 한다. 그 장면에서 김 양의 이 대사가 흘러나온다.
커피 배달을 왔다가 느닷없이 게스트로 마이크를 잡은 김 양의 이야기는 주민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후 백수 청년, 환자가 없다는 병원 간호사, 심지어 고스톱을 치다 룰을 다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전파를 탄다. 지역 록밴드와 세탁소 김 사장, 철물점 박 사장 등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이웃의 이야기에 주민들은 다시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높인다.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지만, 대구에도 '라디오 스타'를 닮은 라디오 방송이 있다. 올해 21년차를 맞은 '성서공동체FM'(주파수 89.1MHz)이다. 2005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국해 동네 소식을 나누며 지역 사회 변화를 이끌어온 '공동체라디오' 방송계의 맏이로 통한다.
이런 이력과는 달리 방송국 규모는 아담하다. 소규모 빌딩 4층 공간이 전부다. 이곳엔 2곳의 방송 스튜디오와 사무실, 교육 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최원혜(38) 성서공동체FM 사무국장은 이곳의 유일한 상근 직원이다. 프로듀서이자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한다. 13일 대구 달서구 이곡동 성서공동체FM 방송국에서 최 사무국장을 만나 공동체라디오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동체라디오란 이름이 낯설다. 성서공동체FM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공동체라디오 방송은 소규모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관련 정보 등을 제공하는 공익 목적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이다. 가청 반경은 송신소 기준으로 5㎞ 정도다. 200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전국 7곳에서 운영돼오다 2021년 정부가 20개 신규사업자를 추가로 선정해 현재 27곳에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대구엔 성서공동체FM과 2024년 개국한 '대구동구FM공동체라디오'(주파수 104.5MHz) 등 2곳이 있다.
공동체라디오는 방송법상 시사 방송은 할 수 없다. 공익 목적으로 허가받은 만큼 앞으로 동네 소식, 동네 주민 이야기 등을 주력으로 내보낸다. 전문 DJ나 방송인이 아닌 동네 주민들이 진행자와 작가, 엔지니어 등으로 참여하며 방송을 만든다.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이주여성이 많은 지역 특성상 외국인들도 다수가 활동한다. 저희들은 이들을 자원활동가로 부르는데, 모두 30여개 프로그램에 7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방송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다.
-소규모 방송국에서 매일 16시간씩 방송을 내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녹음 방송으로 돌리고 있다. 방송에 참여하는 자원활동가 분들이 다들 주민이고 생업이 있다 보니 낮 시간 생방송을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방송 녹음도 오후 7시부터 10시 정도에 많이 몰린다. 그렇다보니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야근을 하는 것 같다. 전날에도 오후 10시가 다 돼서 퇴근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게 있나.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연세가 80대이신 최이수 자원활동가가 진행하는데, 잠시 휴식기가 있긴 했지만 방송국 개국 초기부터 이어온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진행자가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 갖고 있는 생각, 문학 이야기 등을 직접 정리해 들려주는데, 아카이빙 같은 느낌의 방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세대와 구세대를 아우르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저희 방송 콘텐츠를 주제별로 구분하자면 크게 세 갈래다. 지역 소식을 전하는 마을공동체 방송이 있고 음악, 영화, 책, 미술 등을 다루는 문화 관련 방송, 장애인이나 이주민, 어린이, 노년층 등을 위한 소수자 방송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엔 대학생 등 청년층의 참여가 늘면서 프로그램이 더욱 풍성해졌다.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자원활동가는 고등학교 독서 동아리 출신으로, 대학 1학년 때 저희 방송국이 운영하는 라디오 체험에 참여한 뒤 방송을 시작해 4년째에 접어들었다.
방송국 초창기 자원활동가였던 어머니를 따라 유모차를 타고 방송국을 오가던 게 인연이 돼 스무 살 때부터 방송을 시작한 청년 진행자도 있다. 20대 초반 청년들의 생활이나 고민 등을 또래들과 나누고 있다.
그밖에 결혼이주 여성을 초대해 동화책을 소재로 각국의 문화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 네팔 이주민이 게스트를 초대해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그램 등 이주민 방송도 진행한다.
-자원활동가들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며 꾸준히 방송을 하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각자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켜보는 제 입장에선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재미가 없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어떤 일이든 장기간 진행하기가 힘들지 않나.
다들 처음엔 "난 글도 못 쓰고 컴퓨터도 잘 못 다루는데 방송을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신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구상하고 제작해 하나의 콘텐츠가 나오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뭔가를 해내고 이게 방송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걸 듣는 사람들이 있고 반응이 나온다. 이런 것만으로도 다들 큰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성서공동체FM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주민들의 후원금 역할이 크다. 초기 시범사업 시기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반면 비영리단체인 탓에 따로 수익사업은 할 수가 없다. 현재 재정구조는 후원이 80%, 공모사업 20% 정도로 보면 된다. 크진 않지만 5천원씩, 1만원씩 마음을 내어주시는 주민들의 후원금이 있기에 방송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
-어떤 계기로 성서공동체FM에 입사하게 됐나.
▶대학에선 일본어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전공을 살려 일본어 통역 일을 했는데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웹디자인이었다. 이후 해외 취업을 준비해 일본에서 4년쯤 웹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며 귀국할 상황이 돼버렸다. 때마침 대학 선배의 권유로 대구시민재단이 주관하는 '대구청년NGO활동확산사업'에 지원하게 됐고, 성서공동체FM과 인연을 맺게 됐다. 2021년의 일이다.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이 일을 6년째 하고 있다.
▶처음 인턴으로 방송국 일을 배우고 제작을 보조하면서는 이제껏 몰랐던 또 다른 세계를 접한 느낌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담당하는 프로그램이 하나씩 생기게 됐고 직접 대본까지 쓰게 됐다. 그런 부분들이 큰 성취감과 재미로 다가왔다.
지금은 개인적인 성취나 즐거움 보다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자원활동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더욱 큰 즐거움을 느낀다. 제 자신의 생각 폭도 넓어지고 스스로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도 느낀다.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게 제겐 큰 버팀목이다.
-개인적인 꿈이 있나.
▶제가 입사하기 전의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성서공동체FM은 코로나 팬데믹 특별 생방송을 한 달간 진행했다.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번역해 알리거나 공적 마스크 판매 현황, 자영업자를 위한 식자재 소식 등 지역밀착형 정보를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성서공동체FM은 202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런 부분들이 공동체라디오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성서공동체FM은 힘든 과정을 거쳐 주민에게 주어진 주파수다. 이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방송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방송을 하시는 분들이 지치지 않고, 제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오래오래 함께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의 '법대로' 당게 논란 재점화…보수 정치권 비판론 확산
주먹 '쾅' 책상 내리친 尹 "이리떼 같은 특검, 내가 순진했다"
李대통령 지지율 56.8%…"한·중 정상회담 성공적 개최"
국민의힘 당명 변경 찬성 68%…개정 절차 착수
재경 대구경북인들 "TK, 다시 대한민국 중심으로…힘 모아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