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월헌(松月軒) 임득명의 '시가지의 다리를 달밤에 거닐다'는 '가교보월'은 1786년(정조 10) 정월 대보름날이다. 새해 들어 첫 보름달을 맞는 이날 풍속 중에 '다리'를 건너며 '다리'가 건강하고 한 해 동안 병 없기를 기원하는 답교(踏橋), 다리밟기가 있었다. 절기로 보면 입춘의 앞이나 뒤인 때여서 추위도 좀 누그러져 달밤을 즐길만했다.
다리 위에 11명이 보이지만 실은 이날 밤 온 성안 사람들이 다 쏟아져 나와 달구경을 하고 성내의 돌다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건너 서울의 다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청계천 다리 중에서도 번화가에 있는 광통교, 수표교는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답교 명소였다. 설, 추석 다음으로 꼽는 명절인 정월대보름 풍속이라 이날만큼은 야간 통행금지가 풀려 사람들은 밤새 돌아다니며 통금 없는 밤의 자유를 만끽했다.
어눌한 필치의 윤곽선으로 강조한 환한 보름달 아래 청계천을 시원하게 대각선으로 배치해 어스름한 밤풍경을 사선 구도의 운동감과 결합했다. 천변으로 기와지붕이 즐비해 이 다리는 광통교일 듯. 임득명이 '가교보월'을 그린 이유는 이 해에 인왕산 옥동(玉洞) 주변에 살던 13명이 모여 결성한 중인들의 문학동호회인 옥계시사(玉溪詩社) 합동시집인 '옥계십이승첩(玉溪十二勝帖)'에 시각 자료로 넣기 위해서였다. 임득명은 불과 20세에 참여해 이렇게 그림까지 그렸다.
십이승이라고 한 12가지 빼어난 일은 사원(社員)이 일 년 동안 매달 모이는 날과 장소, 행사를 아우른 말이다. 날짜는 가교보월의 정월대보름, 4월의 연등 행렬을 구경하는 초파일처럼 일정하기도 했고, 5월의 밤비 내릴 때, 8월의 국화 필 때처럼 정취와 철을 따르기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정기모임(정모)와 갑작스런 만남인 '번개'가 섞인 셈이다. 옥계시사는 나중에는 자주 모였던 천수경의 집 이름을 따 송석원시사로 불리게 된다. 송석원시사는 30여 년간 지속되며 중인 문학 운동의 정점을 이뤘다.
정조시대 중인들은 문학을 매개로 결속하며 양반사대부에 대체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중인계층의 부상은 조선사회의 역동적 자기 극복 과정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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