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역 지원 정책은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무차별적이어야 한다. 그 지역 주민이 바라고 국가 운영에도 필요하다면 그 지역의 정치적 성향이 정권에 호의적이지 않아도 지원은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자산(資産)을 권력자나 정권의 소유물로 전락시켜 자의적으로 유용(流用)하는 것이 된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국가 기구와 자산을 군주의 세습(世襲) 재산으로 취급하는 정치 체제를 가산제(家産制) 국가"라고 정의(定義)했다. 이에 따르면 왕 부부가 공정 가격까지 정해 놓고 관직을 팔아먹은 고종 치하의 조선은 가산제 국가였다. 관직은 유지 운영에 세금이 들어가는 국가 자산이다.
가산제 시스템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베버의 가산제 국가 정의에서 '군주'를 '대통령'이나 '집권당' 등으로 바꾸면 현대에서도 가산제 시스템은 살아 숨쉬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직(公職)을 팔아먹지 않아도, 정략적 계산에 따른 정부 정책이나 재정 지원의 차별적·선택적 시행도 가산세 시스템의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찍어라, 먹고살게 해 주마'로 읽힐 수 있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공약에 그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김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자신이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이라며 "기회를 한번 달라. 정부 여당의 지원을 요구할 명분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경북(TK) 행정통합, 취수원, 2차 공공기관 이전, 산업구조 재편 등 대구 현안을 거론하며 "제가 책임지고 완수하겠다. 당 대표도 약속했다"고 했다. 이들 현안은 무산됐거나 지지부진하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의 약속은 대구 시민에게 고무(鼓舞)적이긴 하다.
대구 현안의 추진이 막히고 있는 이유는 정부 여당의 미온적 자세 때문이다. TK신공항의 정부 사업 전환이 바로 그렇다. 해줄 것처럼 운만 띄우고는 뒤는 '뚝'이다. TK 행정통합은 대놓고 비토를 놓았다. 먼저 대구시의회가 반대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대구시의회의 반대는 통합 자체의 반대가 아니라 연간 5조원의 재정 인센티브 지원에 관한 명문 조항이 빠진 것을 포함해 TK통합법의 부실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구시의회가 찬성으로 돌아서자 이번에는 기초단체 합의까지 해오라고 억지를 부렸다. 기초단체는 광역자치단체 통합에 대해 당사자 자격이 없다.
김 후보가 시장이 되면 바뀔까? 알 수 없지만 김 후보가 시장이 되든 안 되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전에는 안 됐는데 왜 자신을 대구시장 시켜주면 된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의 약속은, 뒤집으면 대구 현안은 정부 여당이 해결해 줄 수 있었지만 대구시장이 여당 소속이 아니어서 뭉갰다는 얘기도 된다. 과연 그런지 아닌지 김 후보는 대답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이 대구시장이 되지 못해도 이른바 '선물 보따리'는 풀리는지도 밝혀야 한다.
김 후보 개인 차원으로 국한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대구 정치권의 한 인사는 최근 SNS를 통해 "김 후보는 국회의원(수성갑), 문재인 정부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 기간 동안 출마 선언 공약에서 밝힌 현안들을 추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해결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물 보따리'라는 표현 자체가 대구 시민을 시혜(施惠)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대구 시민을 얄팍한 이해타산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으며 "김부겸 전 총리와 민주당은 대구 시민을 설득하려거든, 과거에 왜 못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로서는 곤혹스러운 지적일 것이다.
김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국민의힘이) 대구 시민을 표 찍는 기계로 취급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런지 아닌지는 대구 시민이 판단할 일이지만 본란의 문제 제기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다면 김 후보와 민주당 역시 같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고분고분 따르도록 하는 강압과 다를 바 없다는 박한 평가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지적과 평가에 대해 김 후보가 어떤 반론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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