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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김지효] 작별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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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효 사회부 기자
김지효 사회부 기자

"모루쿠다. 죄 업수다.(모르겠다. 죄가 없다.)"

4·3 희생자 추념식 영상 속 끊임없이 반복되는 제주 도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8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들이 겪어온 아픔과 설움을, 또 다른 상처가 될까, 연좌제와 고통의 낙인이 후손들마저 짓누를까 입밖으로도 꺼내지 못했던 그날의 기억을.

그제야 내가 밟고 있는 모든 땅이 피가 흐르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주도에 도착한 뒤 처음 발을 딛은 제주국제공항조차 수백 명이 잠든 학살터였다. 지난 3일간 돌아본 제주도 대부분의 공간에는 4·3을 기억하는 표식과 비석 등이 설치돼 있었다.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폭포와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등 수많은 관광객이 스치고 지나갔을 길 곳곳에.

누군가는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이른 물놀이를 즐겼고, 누군가는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고 웨딩 촬영을 하기도 했다. 평화롭고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에는 한편으로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1947년 이후 공식적으로 7년 7개월여간 이어진 4·3 기간 동안 수만 명의 죽음이 여전히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국가 형성기에 발생한 국가폭력 사건인 4·3은 오랫동안 '폭동'이나 '공산 반란 진압'이라는 냉전적 틀로 해석됐다. 지난 2월 기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희생자만 1만5천218명에, 유족 수는 12만8천22명에 달함에도.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공포되고, 2003년 정부에서 제주 4·3사건을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진상보고서를 채택한 이후에도 그 꼬리표는 여전했다.

지난 3일 78주년 4·3 추념식 현장에서 만난 유족들 대부분은 그간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가족들이 언제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당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고, 그 배려와 침묵 속에 후손들은 직업의 자유를 박탈당한 뒤에야 진실 일부를 알게 되기도 했다.

4·3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행방불명자만 4천여 명이 넘는다. 1949년 한라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살려주겠다는 사면 계획이 발표된 이후, 군경 등을 피해 산으로 향했던 주민 8천여 명이 하산했다. 하지만 이들은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군법회의에 회부돼 총살당하거나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져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그렇게 대구형무소로 끌려온 4·3 희생자만 14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에는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발굴된 유해 중 4·3 당시 제주에서 행방불명된 두 명의 신원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초기, 군경에 의해 이곳에서 학살된 최대 3천500여 명의 민간인 중에 4·3 희생자도 포함됐던 것이다.

이는 바다 너머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대구경북 역시 국가폭력 휘하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희생자 유족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러한 국가폭력 사건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해서, 다시는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난 2월 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기가 출범한 만큼, 희생자의 이름을 되찾고 지역의 상처를 모두의 기억으로 남기는 절차가 철저히 이행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픈 기억과 영영 작별하는 대신 우리가 선택하고 나아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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