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는 반면에, 정반대의 인물도 있다. 이를테면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숭고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기도취에 빠져 자신과 주변까지 사지로 끌고 들어가는 미치광이 같은, 심지어 살균표백이 과하여 사실과 거짓의 구분이 어려울 뿐 아니라 스스로 삶의 여정을 시대의 이정표로 만들어버린 인물. 예컨대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카이로나 마라케시에서 만날 법한 타고난 모사꾼, 내면의 치열한 자기 존재감을 강화하고서야 외면화된 자신을 내놓는 사람. 나는 로렌스(T.E. Lawrence)를 그렇게 읽었다.
스콧 앤더슨은 로렌스의 일대기를 비판적 성찰로 탐구하면서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제러미 윌슨의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를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in Arabia)로 재창조해낸다. 이를테면 세계대전과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중동 패권을 놓고 합종연횡을 거듭하던 시대에, 사막을 종횡무진 누빈 인물에 대한 엇갈리는 증언과 평가에 대해 검증의 확대경을 들이밀기보다는, 작가 스스로 답한 "아무에게도 제대로 된 관심을 못 받았기 때문에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될 수 있었다."는 말에 덧붙여 동시대 같은 무대에서 활약한 경쟁자를 놓는 방식을 채택한다는 것.
책이 묘사한 20세기 초 아랍에는 로렌스와 유사한 환경과 배경을 가진 비슷한 연배의 청년들 곧 다국적 석유회사의 미국 청년과 독일 고고학자와 유대인 과학자. 그러니까 자국의 중동 정책 수립에 영향을 끼치거나,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하는 범아랍 지하드를 선동하거나, 오스만을 위하는 척 유대인 국가 수립에 기여한 인물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걸작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명장면은 로렌스가 알리 족장을 만나는 신이다. 지평선 끝에서 한점 실루엣으로 다가오다가 마침내 알리 족장이 모습을 드러내던 그 쇼트는, 세계 영화사상 최고의 인물 등장 신으로 꼽힌다. 어쩌면 100년 전 아랍인이 마주했고 훗날 스콧 앤더슨이 탐색한 로렌스는 영화 속 알리 족장의 형상으로 다가온 신기루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작가는 로렌스 전기 작가들이 놓친 수수께끼를 언급하면서 "어떻게 아라비아에 발을 디딘 지 넉 달도 안 된 인물이 아랍인들의 염원을 깊숙이 내면화할 수 있었으며, 그들을 돕는다는 이유로 자국의 비밀을 기꺼이 누설하게 되었고, 마침내 조국이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아랍인들에게 충성하게 되었을까?"(450쪽) 라고 적는다.
"제국주의 시대 말기, 시혜적 태도에 푹 빠진 대다수 유럽인에게 독립이란 토착민들의 자립을 의미하기보다는 좀더 온정적인 무언가를 뜻했다."(314쪽) 런던의 리더들이 위임통치와 종주국 등의 가정교사 노릇을 획책했고, 그 대척점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로렌스가 아랍인의 완전한 독립에 앞장섰다고 주장할 순 없을 터. 그가 옥스퍼드 출신의 제국주의 군대 장교라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로렌스라는 인물의 신화적 업적과 중동에서의 행위를 추적하기보다는 지극히 비사교적이고 비사회적인 한 남자가 아랍인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다양한 배경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때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고 때론 로렌스의 눈높이로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또 때론 능숙한 솜씨로 횟감을 해체하는 요리사처럼 아랍과 열강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중동의 헤게모니 재편이 시작된 현장,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싹틔우던 런던의 응접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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