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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의 연극리뷰] '칼로 막 밸 수 없는'연극 <칼로막베스> "폭력과 권력의 욕망은 '공(空)'의 세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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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칼로막베스. 공연기획 옐로밤
칼로막베스. 공연기획 옐로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조씨고아로 복수하고, 변강쇠 옹녀로 점 하나 찍더니, <퉁소 소리>로 고선웅 표 연극에 마침표를 보여준 극공작소 마방진 20주년으로 대표적인 레퍼토리 세 편(<홍도>, <리어왕외전>, <칼로막베스>)이 릴레이로 공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칼로막베스>(극공작소 마방진, 공연기획사 '옐로밤' 공동제작)는 고선웅 연극성과 연출 형식을 이해하기 위한 중급 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원작과 각색희곡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그 차이가 느껴진다. 원작의 결을 살리면서도 시공간과 극 중 인물의 캐릭터, 사건을 전환해 재배치하는 각색 구성이 탁월하다. 2010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서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른 결로 감각화시킨 고선웅만의 연극적 언어가 강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배우들의 밀도와 앙상블, 대사의 타이밍과 리듬, 비극의 긴장성을 웃음으로 완화하는 서사극적 거리 두기의 능청스러운 호흡들은 고선웅 특유의 미장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집단적 활극으로 '연극적 느와르'를 생산해 내는 작품이다. <칼로막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구조를 재구성해 고선웅식 활극으로 재배치하고, 극 중 인물 노승(김세경 분)을 인물화해 「반야심경」을 통해 권력과 욕망, 살육의 세계가 '공(空)'으로 물화되는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으로 확장되는 작품이다.

칼로막베스. 공연기획 옐로밤
칼로막베스. 공연기획 옐로밤

◇고선웅 표 연극, 웃음과 진지함으로 칼을 빼다.

무대 분위기와 극중 인물들의 캐릭터, 집단적 난투극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은 범죄 느와르 서사에 가깝다. 영화 '범죄도시'의 거친 세계와 홍콩 느와르의 음울한 분위기가 뒤섞이고, 천만 관객을 넘어선 사극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이용휘의 죽음 사이에서 발화되는 장항준 감독 특유의 희비극적 포인트도 연상된다. 그렇게 <칼로막베스>는 권력과 욕망의 비극을 한 편의 피비린내 나는 활극으로 전환한다. 인간 내면의 욕망과 죄의식, 권력에 대한 욕망과 심리적 불안을 표면화하는 비극성을 원작에 내포하고 있다면, <칼로막베스>는 권력과 인간의 욕망을 폭력적 광기의 틈으로 새어 나오는 사악한 집단적 폭력성으로 바라본다. <범죄와의 전쟁>을 연상시키는 세계처럼, 법과 질서가 붕괴한 공간에서 권력은 오직 힘과 폭력으로만 증명되는 구조를 드러낸다. 셰익스피어가 11세기 스코틀랜드 왕국을 배경으로 '덩컨'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쿠데타로 몰고 가며 인간 내면의 욕망과 죄의식이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의 구조였다면, 고선웅은 집단적 폭력 서사로 확장해 공간의 확장성과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의 합을 통해 다른 층위의 <칼로막베스>를 생산하는 작품이다. 느슨해진 속도감과 장면 간의 밀도 편차에도 불구하고, 120분을 끌고 가는 동력은 유효하고 탄탄해진 느낌이다. 특히 비극의 칼날을 웃음의 칼집으로 감싸는 대사의 장치와 타이밍은 고선웅 연출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데, 아무나 칼로 막 밸 수 없는 고선웅 표 연극을 교과서 처럼보여준다. 작품의 무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수용소인 '세렝게티 베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립극장 하늘극장의 개방된 구조는 거대한 수용소이자 전장(戰場)으로 변주되며, 도시 전체가 범죄자들의 수용소라는 설정이다.

강력범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뒤섞인 무법지대에서 권력은 법 제도나 질서보다 힘과 폭력으로 쟁취되고, 원작보다 더한 칼로 막 베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다. 폭력만이 규칙과 법, 질서를 만드는 살육의 현장인 셈이다. 리바이스 청바지 보다 더 질긴 죄수복은 세렝게티 베이 암흑세계의 규칙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셰익스피어의 스코틀랜드 왕국을 초시대적 폭력 공간으로 치환하는 장치다. <칼로막베스>의 세계는 특정 시대보다 반복되는 인간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변주된다. 극 중에서는 예언자 맹인술사(양서빈 분)가 등장해 막베스(김호산 분)의 칼날 끝에 놓인 운명을 예언하고, 노송(김세경 분)은 목탁을 두드리며 한 사찰에 와 있는 것처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반야심경」이 노승의 거대한 육성으로 들린다. 인간의 사악한 욕망과 삶과 죽음, 피로 쟁취한 권력마저 결국은 모두 부질없는 '공(空)'으로 돌아갈 뿐이라며, '막베스'의 칼에 죽은 망자들을 흰 한지로 만든 상여 꽃을 플라스틱 의자 모형 위에 덧씌워 망자들을 소환하는 마지막 장면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역설을 환기한다. 그렇게 <칼로막베스>는 폭력마저도 물화시키는 허무의 차원으로 확장해 '공(空)'이라는 동양적 개념으로 전환한다. 피로 쟁취한 권력도, 욕망도, 삶과 죽음조차 결국은 모두 허무로 돌아간다는 동양 철학적 의미에서 이 작품은 폭력과 권력이라는 비극성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칼로막베스. 공연기획 옐로밤
칼로막베스. 공연기획 옐로밤

그런 만큼, 폭력과 욕망의 세계를 활극으로 밀어붙이면서도 피로 물든 모든 권력과 살육이 결국 공허로 돌아간다는 동양적 사유를 던지는 이 장면은 고선웅 표 연극의 클라이맥스이자 연출의 해석이다. 원작에서 마녀들은 운명을 암시하는 존재이고, 맹인술사는 폭력의 비극을 예언하는 존재로 분한다. '막베스 처'의 캐릭터도 젠더 프리 캐스팅의 전복성을 드러낸다. 붉은색 드레스로 캐릭터를 콘셉트화해 막베스 처를 통해 남성적 욕망을 강화하는 설정은 원작에서 드러난 맥베스의 권력 욕망을 넘어 그의 욕망이 막베스 부인에 의해 증폭되고 폭력성이 강화되는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피'의 광기와 잔인한 권력의 욕망을 증폭시킨다. 피비린내 나는 사악한 인간을 표상화하는 의상과 신발, 막베스 처의 괴물 같은 이미지는 지하세계의 권력을 향해 살육을 정당화하는 캐릭터를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강화되는 액션 시퀀스는 이 작품의 매력이다. 셰익스피어식의 대사와 독백, 방백 구조가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적 언어였다면 <칼로막베스>는 몸의 언어라 할 수 있다.

각 극 중 장면마다 마지막을 위해 촘촘하게 빌드업시키며 마지막 10분, 롱테이크처럼 이어지는 액션은 관객을 물리적으로 압도하는데, 인간의 폭력성과 광기가 서사가 되는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방커의 아들 플리언스의 총기 난사로 막베스의 죽음과 생존은 이 세계가 끝나지 않는 전쟁과 폭력의 순환 속에 있음을 드러내고, 와이어에 매달린 막베스의 죽음 뒤에는 「반야심경」만이 위로할 뿐이다. 그렇게 <칼로막베스>는 미국발 중동전쟁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끝없이 판치는 악과 폭력의 세계도 패권의 절대적인 승자가 없이 결국 모든 것이 '공(空)'으로 돌아가게 되는 나약한 인간들일 뿐이며 죽으면 사라지는 '공' 과 같은 허무한 욕망일 뿐임을 보여준다. 그런만큼 맥베스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권력은 사라지지 않고, 폭력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 세계도 인간도 여전히 <칼로 막베스>와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미국발 중동전쟁, 이란의 고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현실 세계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는 이 작품의 배경과도 겹쳐진다. 승자가 없는 전쟁, 끝없이 이어지는 광란의 살육,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폐허뿐이며, 결국 모든 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으로 귀결되는 '공'의 세계 아닌가. 방커의 아들 플리언스의 총기 난사로 막베스의 죽음과 또 다른 인간들의 생존은 이 폭력과 야만의 세계가 끝나지 않는 순환 속에 있음을 드러내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죽음을 맞는 막베스의 이미지 뒤로 「반야심경」이 울려 퍼지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생명력을 담아내는 장면이다. 막베스 역 김호산 배우를 비롯해 김준수, 원경식 등 <칼로막베스> '세렝게티 베이' 수용소로 집결한 배우들 모두, 대사의 감정보다 몸의 감각이 빠른 속도로 서사의 언어를 형성하는 배우들이다. 몸이 대사 보다 빠르다. 연출의 대표작이자 극공작소 마방진(대표 서정완)과 공연기획사 '옐로밤'(대표 이영찬)이 20주년을 맞아 공동 제작한 <홍도>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시작으로 광주, 대구, 부산 등 전국 7개 도시를 돌며, 이 시대의 홍도가 웃고 울며 고개를 넘는다. 추천하는 연극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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