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좋은 출판사 하나가 있다는 것은 좋은 언론사나 대학이 있는 것과 같다."
이 같은 신념으로 대구지역 출판계에서 40년째 일하고 있는 이가 있다. 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學而思) 대표다.
학이사는 올해로 72주년을 맞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다. 학이사의 전신 이상사(理想社)는 서울에서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면 1948년 2월 17일 자 독립신보에 이상사의 광고가 실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이상사를 포함해 많은 출판사들이 대구로 내려왔다. 피란 후 다들 돌아갔지만 이상사는 대구에 남아 출판업을 이어갔다.
이상사가 대구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중구 종로. 현재 수제맥주집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가 들어선 자리다. 이상사는 1954년 1월 4일 대구 출판 1-1호로 등록했다.
신 대표는 이상사 평사원 출신이다. 1987년 6월 29일 편집부 직원으로 입사해 편집자,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2005년 이상사를 물려받아 학이사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판사 역사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셈이다.
그가 대표를 맡아 지금껏 출간한 책은 400권이 넘는다. 독서문화를 만들기 위해 11년째 독서아카데미를 열고 북토크 등을 통해 독자와의 만남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세계 책의 날을 앞둔 지난 20일 대구 달서구 학이사 사옥에서 신 대표를 만나 지역 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책을 만들고, 책과 사람을 이어온 지난 40년의 이야기를 나눴다.
-출판업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경남 거창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 한 염색공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이상사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지인이 소개를 했던 것이었는데, 그 일이 출판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됐다. 1987년 6월의 일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 게 자양분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월급을 준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신입생 때인 1981년 제가 다니던 학교에선 수습기자에게 8만원을 줬다. 당시 일반 회사 경리 월급이 8만원 정도였으니 시골 출신인 제겐 큰 보탬이 되는 소중한 돈이었다.
당시 학보사 선배들이 매일 기사와 에세이를 각각 1편씩 쓰게 했다.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경험이 지금까지도 제 삶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출판사의 오랜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고 맥을 잇기 위해 지금도 학이사 상호 옆에 이상사라고 표기한다. 그럼에도 회사를 이어받은 뒤 학이사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출판사 대표님의 뜻이 그랬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해, 젊은 경영인으로서 뜻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지은 이름이 학이사다.
'학이사'(學而思)란 이름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리에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논어'의 '위정'편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에서 따왔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한자로 '모일 사'(社) 자를 쓰지만 학이사는 '생각 사'(思) 자를 쓴다.
-학이사란 이름으로 낸 책만 400권이 넘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시작될 때 펴낸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와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모두가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대구를 위해 지역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런 고민 끝에 든 생각이, 언젠가 끝이 날 이 시기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기록 자체로도 역사가 되고, 훗날 혹시라도 유사한 일이 생긴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대구시민 51명의 기록을 담은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와 현장에서 헌신한 의료진 35명의 기록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다.
각기 직업이 다른 이들을 선정해 원고를 청탁하고, 각자 처한 상황과 심정에 관한 글을 받은 뒤 다듬어 바로 책을 만들었다. 현장 의료진의 기록을 담은 책은 원고 청탁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재태 당시 경북대 의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두 달 만에 책이 나왔다. 2020년 4월 10일의 일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일본의 한 출판사가 판권을 사들여 일본어로도 출간됐고, NHK 측이 뉴스 시간에 7분 동안 보도하기도 했다. 책의 힘을 느끼고 지역출판사의 역할을 되새길 수 있었던 좋은 기억이다.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란 대형 현수막이 학이사 도서실에 걸려 있다. 지역출판사의 사명감이 느껴지는 문구다.
▶학이사의 기업 정신이자 캐치프레이즈다. 서울이나 수도권 사람들은 늘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대구, 대구" 하며 사냐고. 사실 저자는 서울에도 많고 전국적으로도 다양하게 있다. 하지만 저는 대구에서 살고 있고, 출판사도 대구라는 기반 위에서 터를 잡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지역 저자의 책을 내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데 자긍심과 사명감을 느낀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출판사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제가 출판계에 처음 발을 디딜 때도 선배들은 "단군 이래 최악이다"란 말을 했다. 그때에 비하면 독서인구가 크게 줄었으니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독자가 준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독자를 양성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저희 출판업계와 공공이 해야할 역할이 아닐까 한다. 독서 분위기를 만들고 한명의 독자라도 더 늘리는 것 말이다.
학이사가 10년 넘게 독서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독서아카데미는 선착순 15명을 모아 3개월간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는 활동이다. 수료 후엔 작성한 서평을 엮어 단행본으로 발간하고 독서모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밖에도 저자를 초청해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와 동네책방에서 책을 읽는 '찾아가는 동네책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책과 관련해 꿈꾸는 일이 있을 것 같다.
▶'책 학교'를 만드는 거다. 아동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 공간 말이다. 하루 10분이라도 책을 읽고, 시 한 줄이라도 읽는 게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잊어버리는 시대가 아쉬워서 떠올린 생각이다.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출판인쇄학교 강의를 가보면 이론 수업을 할 때와 인쇄소·제본소 현장을 체험할 때 교육생들의 관심도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또,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교육생들이 12주 과정을 마치고 나면 교육기간 썼던 글을 모아 서평집을 만들어 준다. 기념 문집이 아니라 서점에 유통되는 책이다.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책이지만, 내 책 하나를 가졌을 때 느끼게 되는 그들의 자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책과 가까워질 수 있다.
당장엔 공간이 없어 힘들겠지만, 언젠가 시골 폐교 같은 공간이 생긴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제가 아니더라고 누군가가, 혹은 대구시나 시교육청 같은 곳에서 꼭 한번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시도를 통해 새로운 독자가 만들어지고, 1980년대까지 이어져오던 '출판도시 대구'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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