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의 어느 겨울날, 시골 마을은 하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 줄 몰랐고, 함박눈은 세상을 덮어버릴 듯 펑펑 쏟아졌다. 논두렁도, 마을 어귀도, 낮은 돌담도 모두 눈 속에 파묻혀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부터가 들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날 오후, 학교를 마친 성훈이와 동네 친구들은 교문을 나서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우산도 없이, 장갑도 제대로 끼지 못한 채 아이들은 눈을 맞으며 길 위로 뛰어들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눈발이 얼굴을 때렸지만, 그 차가움조차 즐거움으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눈을 뭉쳐 친구에게 던졌고, 또 누군가는 미끄러운 길 위에서 일부러 발을 굴리며 넘어졌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빨리 가자! 해 지기 전에 집 가야지!"
하지만 발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그 길 위에서 주먹만한 눈뭉치를 만들어 서로에게 던지는 눈싸움도 하고, 하얀 눈 위에 자신의 신발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또다른 친구들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숯과 솔방울로 눈사람 얼굴을 그렸다. 성훈이는 친구들과 함께 길가의 눈을 한껏 끌어모아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다가, 힘에 부쳐 결국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은 손이 시려워 입김으로 두손을 녹이기도 했다. 코끝은 빨갛게 얼어붙었지만 누구 하나 집으로 먼저 가겠다고 나서는 친구는 없었다. 그저 눈 밭에서 함께 뒹굴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성훈이를 비롯한 동네친구들이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집집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는 어머니들의 손길이 따뜻한 냄새로 번져왔다. 그제야 아이들은 하나둘씩 발걸음을 재촉했다. 젖은 옷과 얼어붙은 손을 녹일 따뜻한 아랫목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성훈이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친구들이 눈 속을 헤치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방금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길 위에는 발자국만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발자국 위로는 여전히 함박눈이 내려와, 조금씩 그 흔적을 지워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뛰놀던 추억은 눈 속에 묻히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겨울날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었다.
김학원의 작품 '하학길'은 1970년대 농촌 아이들의 일상을 담아낸 기록사진으로, 단순한 풍경을 넘어 그 시대의 공기와 정서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작품이다.사진 속에는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눈보라조차도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견디고 지나가야 할 삶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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