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탁은 때로 역사의 심판대가 된다. 식탁 위에 올라온 나물 한 접시, 젓갈 한 종지에도 서슬 퍼런 역사의 비판과 민초들의 해학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숙주나물이다. 이 나물의 이름은 녹두에서 싹을 틔웠다 하여 '녹두나물'이라 불러야 마땅하지만 '숙주나물'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신숙주(申叔舟)의 이름이 투영되어 있다. 신숙주는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당대 최고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수양대군(세조)의 편에 서서 권력을 잡았다. 함께 집현전에서 수학했던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死六臣)이 절개를 지키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는 화려한 관직을 이어가며 부귀영화의 길을 택했다.
백성들은 그의 명석한 두뇌는 인정했으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그의 변절을 비웃었고, 쉽게 쉬어버리고 맛이 변하는 녹두나물을 보고 "신숙주의 마음처럼 잘 변한다"라고 쑥덕거렸고, 급기야 그것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
한편 '곤쟁이젓'은 남을 헐뜯고 음해하는 간신들에 대한 분노가 담긴 음식이다. 여기에는 중종 시대 기묘사화의 주동자였던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의 이름이 얽혀 있다. 당시 조광조(趙光祖)를 필두로 한 사림파의 개혁 정치에 반발한 남곤과 심정은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꿀로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하는 간계로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백성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곤정(袞貞)'이라 불렀고, 이것의 발음이 변해 '곤쟁이'가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작고 볼품없는 곤쟁이들이 뒤섞여 삭아가는 젓갈의 모습에서, 남을 음해하여 권력을 탐하는 소인배의 비겁한 작태를 떠올린 것이다.
민초들이 이토록 가혹하게 그들의 이름을 식탁 위에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변절과 음해는 공동체의 근간인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변절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가치와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다. 신숙주가 보여준 선택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꿈꾸던 동료와의 약속을 배신한 행위였다.
음해는 더욱 비열하다. 정정당당한 논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화살을 쏘는 짓이다. 남곤과 심정이 사용한 수법은 사실의 왜곡과 프레임 씌우기였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해는 한 시대의 개혁 의지를 꺾고 수많은 인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들이 남긴 독기는 결국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당쟁의 소용돌이를 격화시키는 불씨가 되었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숙주나물'과 '곤쟁이젓'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를 맹비난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철새처럼 진영을 옮기는 현대판 신숙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신념은 장식품에 불과하고, 변절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된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음해는 더욱 잔인해졌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행위는 '주초위왕'보다 훨씬 빠르고 치명적이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곤쟁이젓의 짠내보다 더 지독한 악취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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