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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예술기행] 카자흐스탄 알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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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경의 스키타이 부족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인간. 고대 유라시아 초원과 한반도를 이어준 황금문화의 상징이다.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기원전 4세기경의 스키타이 부족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인간. 고대 유라시아 초원과 한반도를 이어준 황금문화의 상징이다.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나무, 새, 짐승 모양 등 정교한 금세공의 장식이 돋보이는 황금인간. 머리의 옆 부분.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나무, 새, 짐승 모양 등 정교한 금세공의 장식이 돋보이는 황금인간. 머리의 옆 부분.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고려인(高麗人), 디아스포라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1860년대 조선 말기 북녘 대기근과 관리들의 수탈, 1910년 일제 강제병합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을 잠재적 일본 스파이로 간주해 벌인 스탈린의 독재폭력이며 약소국 민족에 대한 구(舊) 소련의 첫 포그름(porgrom, 대박해)이었다.

스탈린은 이미 1935년부터 3년에 걸쳐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고려인 지도자 2천5백여 명을 즉결 처형시키거나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보내 정치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둔 터라 고려인들은 항변해 볼 도리도 없이 끌려갔다. 이국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짐짝처럼 가축 수송 열차에 실려 횡단한 6천4백 ㎞의 그 여정은 참혹했다.

장장 한 달여 동안 우랄산맥을 넘는 열차 이동은 노약자들에겐 그 고통이 극심했다. 열차 내부의 불결함과 굶주림, 질병으로 어린 아이와 노인 554명이 사망했다. 숨진 이들의 시신은 역(驛)이 있는 기찻길 옆에 수습하거나 달리는 열차 밖으로 내던져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 '죽음의 이주'는 정착지에서도 이어졌다.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와 주거시설이 전무한 갈대밭만 무성한 황무지, 굶주림, 풍토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유아(사망률 60%) 포함 강제 이주 고려인 사망자 3만 명 또는 5만 명 추정은 고려인에 대한 스탈린의 직접적 총살뿐만 아니라 생존 불가능한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넣은 간접적 절멸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그 어느 민족보다 강인했다. 그 동토에 토굴을 파고 움막을 지어 봄을 기다렸다. 굶주림을 견디며 연해주에서부터 품고 온 씨앗으로 땅을 개간해 파종을 했다. 그리곤 곧바로 살아남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고려인 학교를 지었다(현재 중앙아시아 전문직 고려인 비율이 가장 높다). 맨손으로 개간한 황무지는 7, 8년 만에 옥토로 바뀌었고, 벼농사 북방한계선을 2도나 높였다.

결과적으로 스탈린과 구(舊) 소련의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강제 이주(1989년 소련 최고회의)'를 고려인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뛰어난 영농기술로 중앙아시아를 벼 재배가 가능하고 세계적인 목화산지로 만드는 역설을 이루어냈다.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소수민족' 고려인은 로련 대 인구대비 가장 많은 노력영웅을 배출했고 고려인 농장 아방가르드의 김만삼은 1942년 세계 벼 수확량을 갱신하기도 했다.

알마티시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황금인간을 비롯 인근에서 출토된 역사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알마티시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황금인간을 비롯 인근에서 출토된 역사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사과와 황금인간 그리고 성당들

지평선이 보이는 아스타나의 광활한 농경지대를 버스로 달려 유목국가에서 밀과 쌀을 수출하는 농업대국 카자흐스탄 이야기와 '아방가르드 콜호즈(집단농장)의 김만삼' '제3인터네셔널 콜호즈의 최정학' 등 고려인들에 대한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마티로 들어섰다.

알마티(Almaty, 사과의 도시)는 1925년부터 1994년까지 카자흐스탄 수도였으며, 아스타나로 천도한 이후에도 계속 최대 도시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사과 산지로 알려진 텐산산맥 자락에 있고, 본디 서몽골 준가르(Dzungar)의 영토로 구르반 알마트(古尔班阿里玛图, 사과 세 그루)로 불렸다하니 대구 여행객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을 준다.

카자흐스탄은 청나라에서 러시아제국, 소련을 거쳐 1991년 독립했다. 한동안 경주 계림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보검에 매료되었던 나는 유목계 스키타이-사카족(BC 9∼BC 3)의 황금인간 보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기원전부터 사카(Saka), 오손(Wusun, 우순), 훈(Hun)과 투르크(Turk)가 번갈아 지배했다는 그 땅에서 우리 고조선과 맞물린 시기의 사카족의 쿠르칸(대묘역)에서 발견되었다는 황금인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알마티시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평원을 누비며 살아온 유목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알마티시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평원을 누비며 살아온 유목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사카족 왕자로 추정하는 4천여 개의 황금 조각 갑옷과 관모, 허리띠와 신발, 단검은 복원되어 알마티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1969년 거의 도굴된 묘역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것이라 했다. 이집트 투탕카멘처럼 여러 전설도 전해지지만 발견 시기부터 카자흐스탄의 상징이 되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경주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과 유물은 시대적으로 보아 오손족과 훈족 부장품과 비교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알마티 국립박물관을 나와 2차대전에서 독일군에게 끝까지 항거한 '판필로브 28인 전사 추모공원'에 들렀다. 28인의 오벨리스크롸 화환이 놓인 꺼지지 않는 불을 보며 걸어서 동방정교회 젠코브성당으로 갔다. 1903년 톈산산맥의 목재로 만들어졌고 1911년 대지진이 났을 때 알마티 시내가 깡그리 무너졌을 때도 온전했다는 곳이다. 건축가 이름을 딴 성당은 못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바로코식 균형을 이룬 성당의 파스텔톤 외부는 화려했고 이콘화가 가득한 내부는 어둡고 경건했다. 입구에 놓인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들어가니 여느 정교회 성당처럼 의자가 없다. 아, 그곳에서 나는 오체투지하듯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노파를 보았다. 문득 어머니 기억이 났다. 먼 도시에 있어 결국 나는 지키지 못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던 이들이 유언을 전해 주었다. '관세음보살, 부처님 부디 우리 자식 잘 되게 해주십시오'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바닥에 엎드린 노파를 보니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 고려인 어머니들의 심정 또한 저러했으리라.

성 니콜라이대성당 역시 젠코브의 계획으로 1908년 세워졌다고 한다. 외부는 티파니 보석상자색과 흡사하고 배 모양 구조다. 일곱 개의 푸른 돔과 종탑이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입구에 칼과 왕관을 든 니콜라이 성인의 동상이 또한 독특하다. 내부의 화려한 촛대들과 무언가 슬픈 표정이 역력한 이콘화 속 성모와 천진난만한 아기 예수의 모습이 파란 많은 성당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해 아릿하다.

알마티시 공원의 꺼지지 않는 불.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알마티시 공원의 꺼지지 않는 불. 박순국 전 경일대 교수 제공

성 니콜라이대성당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주교가 처형되고 주교좌가 공석이 되었다가 다시 부임한 주교가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오래 동안 무신론박물관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1945년 주교좌를 복원하고 이듬해 성당의 지위를 현재와 같이 복원했다고 한다. 한 인간의 삶이 어느 전쟁의 역사 못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이 성당의 내력 또한 그러하다. 그러고보니 여행을 하며 점점 해도, 달도, 별도, 나무도 믿고 한낱 돌에도 영성이 깃든 것 같이 느껴져 스스로 다신교도가 되어가는 것 같아 픗 웃게 된다.

'인경소리 이우는 날은 옷자락에 이는 물소리/ 부챗살로 번진 가락 나뭇등걸 속살에 묻혀/ 그토록 접어둔 날에 실려 오는 하이얀 빛/ 감은 눈언저리에 연잎으로 돋는 꽃등/ 적적히 고개돌려 돌아앉은 영(嶺) 너머/ 연초록 꿈을 풀며 흘러가는 여울소리// 청잣빛 일렁이며 내안(內岸)의 유역 위에/ 낱낱이 빛 물결로 돌아드는 어린 나날/ 바람도 세월에 닿아 풀잎으로 돋는다'

어머니 생전 그토록 다정하게 지냈던 외사촌 동생 김이주 시인의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적(寂)을 되뇌며 세상 모든 신들에게 만물의 안녕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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