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디어아트 선구자 백남준, 그리고 최근 국내외에서 주목 받고 있는 미디어아트 그룹 김치앤칩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갤러리신라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 감각의 확장이라는 공통된 화두를 담고 있다. 백남준이 일상의 사물을 통해 매체 환경을 성찰했다면, 김치앤칩스는 빛과 알고리즘을 활용해 관람객이 경험하는 새로운 공간과 지각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모니터가 달린 대형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백남준이 1988년 제작한 6개의 대형 의자 시리즈 작업 중 하나인 '문학은 책이 아니다(Literature is not a book)'다.
공항 의자에 책과 모니터, 안테나, 지구본 등을 결합한 것으로, 문학이 책을 넘어 다양한 매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오늘날을 예견한 듯한 작품이다. 예술을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하며, 인간과 매체의 관계를 질문한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전시장에서는 김치앤칩스의 'Optical Rail(옵티컬 레일)' 작품들이 전시됐다. 마치 디지털 스크린 위로 모션그래픽이 상영되는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작품이다.
흑백의 분절된 선, 면이 그려진 평면의 이미지 위로 아크릴 렌즈가 모터에 의해 좌우로 이동한다. 렌즈는 평면을 입체로, 직선을 곡선으로, 정지를 모션으로 보이도록 하며 하나의 패턴을 만든다. 이는 한 장의 이미지가 품고 있는 압축된 시간의 레이어를 시각적으로 해체하는 듯한 착시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치앤칩스가 처음 선보이는 신작 '읽지 않는 문자(Unread Characters)'도 만나볼 수 있다.
이상의 시 '까마귀의 눈(오감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언어 자체가 분열되고 소외됐던 당시의 억압적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김치앤칩스는 '까마귀의 눈(오감도)'를 손으로 다시 쓰고, 이를 머신러닝 시스템으로 학습시켰다. 손으로 쓴 텍스트는 인공지능의 내부 논리에 의해 재구성되고, 렌즈와 조명 배열을 통해 2차원 렌티큘러 구조로 재구현된다.
제한된 시야 안에서는 한 글자의 문자만 보이지만 관람객이 1~3m 범위 내에서 위, 아래,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문자들이 부드럽게 다른 문자로 변형된다. 읽기는 눈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체적인 행위가 되며, 결국 언어를 읽는 것이 안정되지 않고 항상 유동적이며 위태롭고 파편화된 상태임을 얘기한다.
갤러리신라 관계자는 "약 40년의 시간차를 두고 제작된 이들의 작품은 각각의 시대가 가진 기술 환경을 반영하면서도, 인간의 감각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공유한다"며 "이번 전시는 두 작업의 대화를 통해 한국 미디어아트의 역사적 흐름과 미래 가능성을 조망하고, 관객들에게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예술적 상상력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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