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절집으로 걷는 나그네
진정한 평화가 절실히 그립다. 때로는 아비규환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세상이다. 전장은 점점 늘고, 강자는 약자를 거칠게 밀어낸다. 욕심이 쉽게 사람을 해하고, 혐오의 말들은 불길처럼 번져간다.
'내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 하지만,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날들이다. 문득 청정한 절집으로 발걸음을 놓고 싶었다. 산길의 완만한 흐름에 기댄 전각을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곳. 자신을 겸허히 낮추는 법을 배우며 삶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어느새 나그네는 황악산(1,111m) 자락에 깃든 직지사로 향할 행장을 꾸리고 있다.
산문을 지나자 바람결에 흔들리는 연등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붉은빛과 노란빛, 연분홍의 연등이 녹음이 짙은 숲길 위에서 가볍게 흔들린다. 세월을 먹은 거목 사이로 스며드는 볕은 부드럽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사부대중들의 발걸음은 차분하다. 그 풍경 속에서 나그네는 더는 번다해지지 않는다. 격한 생각들은 바람에 실려 멀어지고, 살아가야 할 날이 그렇게 두렵지가 않다. 한결 자유롭게 대웅전(보물 제1576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지은 사찰로 전해진다. 절 이름은 깊은 뜻을 품고 있다.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비롯된 표현이라 한다. 밖을 내다보는 시선을 거두고 자기를 들여다보라는 말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자신을 놓지 말라는 당부로 들린다.
사람들은 직지사를 천년고찰이라 부른다. 그 말은 단지 오래된 절이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직지사는 임진왜란의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수많은 전각이 불타고 무너졌다. 그럼에도 절집은 다시 일어섰고, 시대의 거센 파고에도 산문은 닫히지 않았다.
문득 생각이 달라진다. 깊은 산속의 청정한 절집도 처음부터 평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타고 무너지는 그 경계를 넘기고 비로소 평온을 구한 것이다. 어쩌면 청정이란 세상의 험한 파고를 견뎌낸 이들이 얻는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저만치에 대웅의 집이 있으니
직지사의 가람은 산의 흐름을 억지로 거스르지 않는다. 일주문과 금강문, 사천왕문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왼편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 오른다. 사람의 손이 보태진 길이지만,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반듯한 직선과 속도를 앞세운 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도시는 자꾸만 땅을 밀어내고 터를 뒤바꾸지만, 직지사는 자연의 결을 거스르지 않은 채 풍경을 완성한다.
이 얼마 만인가. 휘어지고 굽이진 길을 천천히 걷는 일이. 저만치 임진왜란의 화마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천왕문이 느긋한 표정으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처마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지붕, 붉은 기둥과 흰 벽, 그리고 용의 형상을 담아낸 벽화가 어우러져 사람들을 반긴다. 한때 화려했을 단청의 색은 옅어졌지만, 문은 오래된 시간만이 빚어낼 수 있는 깊은 품위를 얻었다.
문 곁에는 널찍한 바위 하나가 놓여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바위다. 사연은 그렇지가 않다. 어린 소년은 열다섯 무렵 부모를 잇달아 여의고 세상을 떠돌며 방황한다. 어느 날 직지사를 찾았다가 천왕문 앞 은행나무 그늘이 짙은 바위에서 잠이 든다.
같은 시각 대웅전에서 참선하던 주지 신묵은 놀라운 꿈을 꾼다. 황룡 한 마리가 천왕문 은행나무를 감싸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놀라 눈을 뜬 신묵 스님이 그 자리로 와보니 한 아이가 바위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소년은 잠에서 깨어 직지사로 출가하는데, 훗날 사명대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사천왕문을 조심스레 넘고 만세루를 지나니 마침내 대웅전 마당이다. 휘어지며 이어지던 길이 비로소 한곳으로 모인다. 마당은 거대한 연등의 바다다. 다채로운 연등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며 긴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 아래에 서 있으니 문득 나그네도 연등이 된 기분이다.
세상이 아무리 난리여도 끌 수 없는 등불 하나. 누군가는 가족의 안녕을 빌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픈 몸의 회복을, 또 누군가는 전하지 못한 사연을 저 등에 매달았을 것이다. 부디 연등의 불빛이 삶에 지친 이들을 비추기를 바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선당(禪堂)이 마주하고 있고, 그 앞에 앉은 두 개의 삼층석탑(보물 제606호)은 오랜 벗처럼 나란히 마당을 지키고 있다. 화강석 축대 위에 우뚝 올라선 대웅전의 풍채는 동국 제일 산사의 기품을 한 몸에 품고 있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인조 27년인 1649년에 중창되고, 영조 11년인 1735년에 다시 세워진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형상의 대웅전은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처마 아래 장엄하게 서 있다.
나이 먹은 굵은 기둥과 단청, 빛바랜 창호에는 긴 세월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 나그네의 시선은 몇 번이고 머물게 된다. 기둥마다 걸린 주련의 법문을 새기며 대웅전 안으로 들어선다. 삼존불(보물 제1576호)이 고단히 살아가는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그 뒤편에 놓인 석가여래삼불회도(釋迦如來三佛會圖, 국보 제347호)는 대웅전을 깊은 고결함으로 채운다. 숨을 죽인 채 한참을 올려다본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불국토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시선은 다시 삼존불 앞으로 돌아간다. 가운데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좌우에서 균형을 이룬다. 그 주위에는 수많은 부처와 보살들이 자리하고 있다. 실내를 둘러싼 출입구 벽화들에도 시선이 머문다. 용 위에 선 관음보살은 거센 물결을 헤치며 대웅전을 스쳐 지나갈 것만 같다. 직지사 대웅전이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를 피운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다시 세속으로 걷는 나그네
삼존불 아래 놓인 수미단(보물 제1859호)도 눈길을 붙든다. 조선 후기 목공예의 미학이 담긴 수미단에는 연꽃과 구름, 봉황과 용이 다채로운 색으로 층층이 새겨져 있다.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조각을 입힌 수미단을 만든 이의 손길에 공력이 입혀진 게 분명하다. 수미단 위에 앉아 계신 대웅의 형상에 눈을 뗄 수 없다.
천천히 두 손을 모아, 정중히 삼배를 올린다. 한 번은 나를 내려놓기 위해, 한 번은 생각을 버리기 위해, 또 한 번은 살아가야 할 날들을 위해.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는 순간, 나그네는 비워지고 가벼워진다.
삼배를 올린 뒤 다시 신발을 신고 세속의 길로 내려선다. 세상은 여전히 거친 말들이 부딪힐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옳음을 앞세우고, 누군가는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갈 것이다. 먼저 판단하고, 먼저 밀어내는 말들은 반복될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소란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등질 수는 없다. 직지사도 처음부터 평온한 절집은 아니었다. 임진왜란의 화마가 전각을 삼켰고, 무너지는 아픔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섰고, 지금의 평온을 되찾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집도,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처음부터 평온한 집과 인생이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참혹한 상처와 무너지는 아픔에 스러지지 않고 다시 자신을 일으킨 자만이 자신의 집을 구할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의 인생은 조금 더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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